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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장 헤집기]도비문답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53호 33면

고객만족, 품질관리, 사회공헌….
기업들이 흔히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원래는 일본 기업들이 전매특허처럼 쓰던 거였다. 나온 지 270년쯤 된다. 주창자는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1685~1744). 평민 출신으로 장삿집에 들어가 요즘 말로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그러다 혼자 공부해 독자적 사상 체계를 만들어냈다. 인간의 본성, 마음가짐, 심성을 강조해 '심학(心學)'이라고도 한다. 추상적인 듯하지만 실용적인 내용이 듬뿍 담겨 있다.

대표적인 저서는 1739년의 '도비문답(都鄙問答)'.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의 문답이라는 뜻이다. 이시다가 선생의 입장에서 한 수 가르쳐 주는 대화체로 돼 있다.여기에 나온 그의 경제관은 당시 상공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책은 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금도 일본 기업인들에겐 반드시 읽어야 할 경전으로 꼽힌다.그는 사(士)와 농공상(農工商)의 평등을 주장했다. 글 좀 읽는다는 학자나, 칼 차고 다니는 무사나, 물건 팔아 돈 버는 상인이나 다 같다는 얘기다. 무사계급이 지배하던 시절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그는 영리추구를 나쁘게 보던 통념에 맞서 그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게 그 유명한 ‘상인 봉급설’이다. 무사가 세금으로 받는 봉급처럼 상인이 리스크를 부담하며 얻는 이윤은 생계와 가업 유지를 위한 봉급이라는 얘기다. 그는 또 적정 이윤은 부가가치이지, 물욕의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했다.고객만족에 대한 언급도 있다.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걱정할 게 없다.”

이타주의적 상도(商道)도 강조했다. 이를 깨우치면 탐욕에서 벗어나 인(仁)의 경지에 들어간다고도 했다.“물건을 팔 때 중요한 건 소비자인 상대방도 납득하고, 상인인 자신도 납득하는 것이다. 상대와 자신이 모두 잘되는 게 진정한 상도다.”

과도한 물욕과 사치는 경계했다. 금욕, 절제, 노동과 이를 통한 부의 축적을 이상적이라고 봤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나. 자본주의의 정신적 토대가 된 프로테스탄트 윤리관 말이다. 실제로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는 이를 ‘일본판 캘비니즘’이라고 치켜올린다. 또 일본 산업혁명의 사상적 동력도 여기에서 찾는다.
요즘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 경영이라는 맥락에서 심학이 다시 주목받는다. 특히 일본항공의 구원투수로 나선 이나모리 가즈오(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은 심학에 영향받은 인본주의 경영으로 유명하다.

물론 그런 쪽으로 너무 기울면 문제도 생긴다. 기업 우선주의에서 비롯한 과열경쟁, 인간관계에 얽힌 유착, 효율보다 인정을 앞세우는 풍토….따지고 보면 대량 리콜에 직면한 도요타도 그런 문화에서 커온 기업이다. 무슨 수양이라도 하듯, 한눈 안 팔고 기술 개발에 매진하던 기업이다. 그러다 이번에 덜커덕 사고를 냈다. 예전의 명성엔 와장창 금이 갔고, 소비자들의 신뢰는 흔들리고 있다. 도요타가 '도비문답'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찾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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