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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날이 온다”...일본인 격려하는 사카모토 료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53호 04면

요즘 들려오는 일본 뉴스들을 볼라치면, 외국인 입장에서도 “이걸 어째” 싶을 정도다. 모노쓰쿠리 정신(장인정신)을 대표하던 도요타자동차가 처한 위기는 일본 경제뿐 아니라 일본인들의 자존심에까지 크나큰 상처를 입힌 듯하다. 도쿄에 갈 때마다 한가하게 쇼핑하기 좋아 자주 들렀던 긴자 인근 유락초의 세이부 백화점은 너무 한가해져 올해 안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실업률은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자살자 수는 12년째 3만 명을 넘어섰다.

이영희 기자의 코소코소 일본문화 - 우울한 일본 방송계

연예계 관련 소식도 마찬가지다. 발랄한 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방송사와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수익저하로 허덕이는 가운데 출연료 삭감으로 위기를 타개해 보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모양이다. ‘주간현대’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일본 최고 여배우 마쓰시마 나나코의 최근 드라마 출연료는 기존의 절반으로 줄었다. 한국 드라마 ‘요조숙녀’의 원작인 인기 드라마 ‘야마토 나데시코’에 출연했던 마쓰시마는 편당 300만~400만 엔(약 3800만~5100만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던 배우다. 대하드라마 ‘천지인’에 출연한 쓰마부키 사토시, ‘노다메 칸타빌레’의 에이타 등 젊은 정상급 남자 배우들의 출연료 역시 대략 30~40% 삭감됐다.

광고에서의 몸값 하락은 더욱 심하다. 최고의 연예인 광고모델로 각광받는 여배우 나카마 유키에(‘고쿠센’), 나가사와 마사미(‘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의 CM 출연료는 약 2000만 엔(약 2억5000만원) 이상씩 하락했다고 잡지는 전했다. 또 상대적으로 출연료가 싼 어린이나 동물을 모델로 한 광고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올 1분기(1~3월) 상영 중인 드라마들만 봐도 일본 사회의 침체를 읽을 수 있다. 한국의 일드팬 사이에서도 “볼 만한 일본 드라마가 점점 없어진다”는 불만이 나온 지 꽤 오래다. 방송국들이 신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새로운 작품을 기획하기보다 인기 드라마의 속편을 제작해 리스크를 줄여보려 하기 때문이다.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중 시청률이 어느 정도 나오는 작품들은 후지 TV의 ‘코드블루 시즌2’를 비롯해 TBS의 ‘블러디먼데이 시즌2’, 아사히 TV의 ‘샐러리맨 긴타로 시즌2’ 등 대부분 기존 인기작의 ‘재탕’이다.

신작 드라마의 제목이 전해주는 느낌도 자못 비장해졌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성실하고 곧은 삶을 고수하려는 한 남자를 그린 후지TV의 ‘바른 생활 사나이’, 회사 내 집단 따돌림 문제를 다룬 ‘울지 않기로 결심한 날’, 사법시험에 아홉 번이나 떨어진 여주인공이 나오는 ‘꺾이지 않는 여자’ 등은 모두 암울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처럼 우울함 일색의 일본 방송에 그래도 한줄기 희망을 비춰주는 이가 있으니 바로 사카모토 료마다. 메이지 유신을 이끈 막부시대 말기의 영웅 료마의 일대기를 그린 NHK 대하사극 ‘료마전’은 시작과 함께 돌풍을 일으키더니 꾸준히 2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료마전’을 보고 있을 때만큼은 일본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는 일본인도 많다고 한다.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는 고민을 상담하고 싶은 인물 1위로 사카모토 료마가 꼽히기도 했다. 이유는 “그의 결단력과 강한 신념이 불황으로 인한 고민에 명확한 해결책을 전해줄 듯해서”란다. ‘료마전’에 등장하는 명대사 “변하는 날이 온다”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일본인들에게 하나의 주문이 되고 있는 셈이다.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가요·만화 등을 담당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 ‘스마프(SMAP)’를 향한 팬심으로 일본 문화를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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