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기경제 해법 직설 좌담] 下. 부실기업 '창조적 파괴' 필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박승·송병락교수의 대담(12일자 5면)에 이어 박원암(홍익대) ·윤창현(명지대) ·전주성(이화여대)교수 등 세명의 중견 경제학자들이 위기의 한국 경제를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하는 좌담회를 준비했다.

이들은 구조조정 과정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노사문제와 공기업 개혁,재정의 역할 등 다양한 주제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대안을 모색했다.중견학자 답게 정부와 기업은 물론,노조에 대해서도 비판과 주문을 아끼지 않았다.

<4대 부문 개혁>

▶박원암 홍익대 교수=정부가 재벌·금융·공공·노동 등 4대 부문 개혁을 내년 2월까지 마무리한다고 했는데,힘들 것이다.기업개혁은 상시적으로 하겠다는 종전의 정부 입장과도 배치된다.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을 없앤 후에도 또다른 부실은 계속 생길 것이다.기업들이 부실화를 막기 위해서는 스스로 ‘창조적 파괴’,다시 말해 적극적인 구조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정부가 재벌·금융·공공·노동 등 4대 부문 개혁을 내년 2월까지 마무리한다고 했는데,힘들 것이다.기업개혁은 상시적으로 하겠다는 종전의 정부 입장과도 배치된다.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을 없앤 후에도 또다른 부실은 계속 생길 것이다.기업들이 부실화를 막기 위해서는 스스로 ‘창조적 파괴’,다시 말해 적극적인 구조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전주성 이대 교수=구조조정 작업은 초기에 틀을 탄탄하게 짜고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그런데 정부는 벌써 흔들리는 것 같다.구조조정과 동시에 기업경쟁력을 키우는 산업정책도 펴나가야 한다.일본의 반도체산업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술처럼 우리도 경쟁력 있는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윤창현 명지대 교수=옳은 지적이다.K그룹이 사옥을 포함해 대부분의 자산을 팔았는데,그 돈을 쓸 곳이 없다고 한다.그만큼 돈 될 만한 사업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경쟁력이 있는 것 처럼 보였던 초박막액정화면(TFT-LCD)도 최근 대만에게 추월당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부실처리에만 급급해 산업경쟁력 부문은 뒷전에 밀어둔 탓이다.

구조조정작업의 성패가 노조문제와 실업자대책 등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지금까지는 금융·기업 구조조정에 너무 치중해온 느낌이 든다.

<공기업 문제>

▶윤창현=공기업은 그동안 큰 특혜를 누려왔다.안정성은 공무원 수준이고 급여는 민간기업에 준해 받아왔다.공기업 근로자들은 이제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박원암=공기업 개혁과 관련,한전 ·한국통신은 포항제철과 달리 민영화와 함께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한전은 발전 ·송전부문 등으로 나눠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등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지만 한통 민영화에 대해선 아직 제시된 방향이 없다.

▶전주성=공공부문 개혁이 미진한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잘못이다.공기업 민영화는 경영효율성을 높이는 것 이전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바로 민간기업이나 금융기관 개혁을 추진하는 밑천이 된다는 점이다.공기업을 개혁하지 못하는 정부가 민간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뭐라고 요구할 수 있겠나.또 정부가 민영화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내년 경제>

▶박원암=우리 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질 것이 걱정된다.내년 경제를 세가지 시나리오로 나눠볼 수 있는데,그중 하나가 5%대 성장률로 연착륙하는 것이다.지금으로선 최상의 시나리오다.

다음은 성장률이 3%대로 떨어지는 경착륙이고,마지막은 3%대 성장을 한 뒤 구조조정이 제대로 안돼 일본식 장기 불황으로 빠지는 것이다.현재로서는 세번째 시나리오를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성장률을 다소 낮추더라도 지속적인 구조조정으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최근 소비가 크게 주는 것은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주가하락으로 인한 자산감소에 의한 것이 더 크다고 본다.시가총액으로 2백조원이 사라졌고 부동산가격까지 내려가 일본식 불황요인이 생겼다.

▶전주성=최근 소비감소는 소비자들이 장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내구소비재 구입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문제는 구조조정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풀린다.

금리에 따른 소비의 변화가 크지 않은 상태에서 통화량을 늘리는 정책은 별 도움이 안되는 것 아닌가.오히려 일정한 범위내에서 재정지출을 늘리는 정책을 펴야 한다.

▶윤창현=외환위기를 당한 나라의 특징은 경기가 급하게 떨어졌다가 다시 급하게 올라가고 다시 곤두박질치는 것이다.지난해 고삐를 당겼더라면 지금 이 정도의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내년 경기가 급락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장기불황에 빠지면 큰 일이다.경제가 6%대로 성장하면 12년이 지나면 2배로,3%대의 성장을 하면 20년이 넘어야 경제가 두배로 커진다.

<실업·노사 문제>

▶전주성=내년에 실업문제가 다시 심각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장기적인 사회안전망 확충과 동시에 단기적으로 실업대책을 위한 재정확대가 필요하다.공공근로 사업도 필요하지만 사회간접자본(SOC)예산을 증액해서라도 건설분야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또 세금이 남는다고 국가 빚을 갚을 게 아니라 실업대책에 투입해야 한다.공적자금 상환 등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이 걱정은 되지만 그렇다고 재정적자가 무서워 쓸 돈을 안써서는 곤란하다.

노사관계에서 정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정부는 그동안 불필요한 개입으로 노사관계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었다.

그동안 노사정(勞使政)위원회가 구성돼 활동을 했지만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나.분규가 발생할 때마다정부가 나서 타협안을 만드는 것은 곤란하다.정부가 타협안을 제시할 경우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박원암=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실업대책은 강도만 다를 뿐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정부는 실업률을 어느 수준까지 용인할 지 분명히 한 뒤 거기에 맞춰 지출을 해 나가야 한다.80년대 노사문제의 화두는 임금이었지만 지금은 해고다.

해결방법은 임금을 적게 받는 수밖에 없다.우리 사회는 임금이 매우 비탄력적이다.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임금이 2.5% 감소하는데 그쳤다.그런데 지난해 임금상승률은 11%나 된다.이처럼 임금이 경직된 상태에서 기업이 택할 수 있는 것은 해고 밖에 없다.

▶윤창현=정부의 실업대책이 공공근로와 같은 너무 단기적인 대책에 치중돼 있는데,중장기적으로 창업과 재교육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근로자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프로야구 선수처럼 어느 회사에 있더라도 열심히 뛴다는 자세가 필요하다.직업인으로의 삶은 있어도 평생 같은 직장인으로 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농업정책>

▶박원암=최근 농어가 부채경감문제가 다시 부각됐는데 이젠 농업정책과 농민정책을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92년 우루과이라운드로 시장개방을 하면서 생산성은 높이지 않은채 투융자사업에 42조원을 쏟아부은 것이 문제였다.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윤창현=우리나라 농업정책은 한마디도 ‘전원일기’수준이다.국민 모두가 농민의 자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농민=선량한 사람’, ’정책 당국자=악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산업으로서의 농업문제와 약자로서의 농업과 농민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농업은 철저한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고 농민은 경영능력이 있는가 따져 봐야 한다.근로자로서 노동능력이 있을지 몰라도 경영능력은 부족한 농민들이 많다.

중소농과의 합병을 유도하고 농민은 주주로 참여하고 경영자를 도입하자.서산농장 매각을 통해 새로운 사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벤처·기업지배구조>

▶전주성=정부가 내년 경제운용계획을 짜면서 소득불균형 해소나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는데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정부가 유념해야 할 것은 기업들이 일할 의사가 없을 때 지원을 해 주면 돈만 받고 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그동안의 벤처기업 지원책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고 본다.

최근 벤처기업들이 자금난을 겪으면서 대기업들이 벤처를 수직적으로 통합하는 경우가 많다.이는 벤처성장의 원동력인 수평적 구조의 장점이 사라지는 것으로,경계해야 한다.

기업지배구조는 재벌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고 시장체제를 확립하자는 것이다.지금까지 기업들이 부채비율 축소에 신경을 많이 쓴 것은 외환위기 이후 거쳐야 할 한 과정이지 본질은 아니다.본질은 기업 스스로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체제 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추는 것인 만큼 집중투표제나 집단소송제를 겁낼 필요가 없다.

▶윤창현=그동안 정부의 벤처기업 정책은 벤처기업 주가 띄우기 정책과 혼돈된 감이 있다.한마디로 벤처기업을 살리는 정책이 아니었다.신경제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있지만 정보통신산업으로의 이전현상은 계속 진행돼야 한다.

지배구조 문제는 지주회사쪽에서 답을 찾는 것이 좋겠다.과거 황제식이었던 재벌회장의 권한을 지주회사의 사장 정도로 제한하는 것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이를위해 무척 까다로운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완화해주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소득격차 문제는 그것을 무조건 ‘차별’로 받아들이고 적대시하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능력에 다라 연봉이 달라지는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다만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기초생활보장법 등으로 지원해야 한다.

정리=송상훈 ·차진용 기자

<박원암 교수 약력>

▶47.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 MIT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현 홍익대 경영대학 무역학과 부교수

▶현 금융발전심의회 국제금융분과 위원

<전주성 교수 약력>

▶43.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국제통화기금(IMF) 방문교수

▶세제발전심의회 위원

▶현 이화여대 경제학과 부교수

<윤창현 교수 약력>

▶40.서울대 물리학과.경제학과 졸업

▶미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고려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현 명지대 무역학과 부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