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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체육 살리자] 공 몇개 던져주고 "놀아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비가 온 뒤 며칠 동안 질척거리는 운동장. 삐걱거리는 뜀틀과 뜯어진 매트. 골대가 없는 농구대, 실내 체육관은 꿈도 꿀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무얼 가르칠 수 있는건지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아요. 그러다보니 '아나공' (공이나 몇개 던져주고 놀라고 하는 것)선생이 되는 겁니다."

*** 운동장 자리다툼 치열

"30~40학급이 있는 중학교에서 주당 3시간 체육 수업을 하려면 6개 학급이 한꺼번에 운동장에 몰려나올 때도 있습니다. 운동장 한 귀퉁이라도 차지하려고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 간에 자리다툼이 치열한 마당에 어떻게 정상적인 체육수업이 가능하겠습니까. "

"교육 과정상 초등학교 6학년은 수영 중에서도 접영을 가르치도록 돼 있지만 우리 실정상 학교는 물론 학교 근처에도 수영장이 없습니다. 수영장이 가까이 있다 하더라도 불과 6시간 동안 한 학급 40명에게 접영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현실에 맞지 않는 교과 과정도 문제지요. "

"체조 수업시간에 손짚고 앞돌기를 가르치는데 아이들은 앞구르기 정도밖에 못하더군요. 그런데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놀면서 손짚고 뒤돌기를 하는 거예요. 깜짝 놀라 물어보니 '백 댄서들이 하는 것은 다 따라 할 수 있다' 고 하더군요. 갑자기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체육시간에 원하는 것은 피구나 발야구 정도예요. 해본 게 없었기 때문이지요. 체육관이나 스포츠센터에 다니는 학생들도 의외로 많아요. 그런데 체육관을 열심히 다니는 학생일수록 체육수업 시간에는 소극적이에요. 아이들의 욕구를 학교체육이 해소시켜 주지 못하는 거지요. "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본 국내 학교체육의 현실이다.

우선 초등학교는 학생들이 학교 체육을 처음으로 접하는 곳이다. 초등학교에도 체육전담 교사가 있다. 그러나 체육전담 교사 1명당 학생수가 무려 1천3백87명 꼴이다. 자연히 담임교사들이 체육도 가르친다. 제대로 체육 수업이 진행될리 없다.

*** 체육교사 1, 300여명 담당

더구나 현재 초등학교 교사 대부분이 여교사로 채워져 있어 내실있는 체육 수업이 힘들다. 실기 위주인 체육 과목을 여교사 대부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 교사들은 학사 업무 대부분이 몫이어서 비가 오거나 잡무가 많으면 체육시간을 다른 시간으로 대체해버린다. 체육시간을 기다리던 학생들도 차츰 흥미를 잃어버리는 이유다.

실내 체육관이 없다 보니 비가 오면 대책이 없다. 비오는 날만 문제가 아니다. 배수가 안돼 비온 뒤 최소한 이틀 정도는 운동장이 질척거려 실외 체육 수업이 불가능하다.

*** 사설 체육관서 욕구 충족

이럴 경우 교실에서 체육이론 수업을 해야 하지만 이를 소화할 수 있는 교사들도 거의없는 실정이다.

학교 운동부 문제도 심각하다. 전국의 초.중.고교 운동부는 1만2천8백여개에 이르며 학생 선수는 11만1천명이 넘는다. 이들 대부분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수업을 빠지면서 운동을 한다.

운동부가 있는 학교에서는 체육 예산 대부분을 시설 확충보다는 운동부 운영에 쓰고 있으며 일반 학생들은 대부분 시설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손장환 기자

<도움말 주신 분>

▶안민석 중앙대 사회체육학부 교수

▶황수연 서울시교육청 평생체육교육과장

▶임재홍 서울시교육청 장학관

▶이희수 덕수초등교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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