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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랜드마크를 찾아서] 11. 영국 버밍엄 심포니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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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런던 유스턴 역에서 기차로 1시간 50분 걸리는 버밍엄. 영국 미들랜드의 중심도시이며 영국 제2의 도시다.

산업혁명 이후 의류.자동차 등 제조업으로 경제적 부를 축적한 이곳은 2차대전 때 독일군 공습의 표적이 되기도 한 대표적인 공업도시. 하지만 금융과 정보통신 산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한 때 활기넘쳤던 공업도시의 도심은 시민들이 외면하고 자칫 빈민가와 슬럼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버밍엄은 도심 재개발을 통해 최고의 문화시설을 세우는 '충격요법' 을 구사해 국제적인 문화.컨벤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올해 초 여행 전문지 '러프 가이드' 는 버밍엄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60위에 선정했다. 로마.밀라노.바르셀로나.홍콩을 모두 앞지른 것이다.

국립전시센터(NEC)와 국제컨벤션센터(ICC).버밍엄심포니홀이 1980년대 중반부터 막이 오른 '버밍엄 르네상스' 의 주역들이다.

버밍엄 문화부흥의 뒤편에는 지난 80년 약관 25세에 버밍엄심포니 음악감독을 맡아 시골 교향악단을 일약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성장시킨 사이먼 래틀 경(빈필하모닉 차기 예술감독)이 있다.

래틀의 영도력과 예술적 헌신에 감명을 받아 심포니홀 건립 계획을 세운 버밍엄시는 때마침 추진 중이던 국제 규모의 컨벤션센터 건설과 연계해 대규모 공연.컨벤션 타운을 완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ICC와 함께 버밍엄심포니홀이 들어선 자리는 1941년 독일군의 공습으로 파괴될 때까지 CBSO의 주무대였던 버밍엄 뮤직홀. 1856년에 개관해 그후 프린스 오브 웨일스 극장에 이어 타운홀로 이름을 바꾸었다.

버밍엄심포니홀은 컨벤션센터와 같은 지붕을 쓰고 있지만 전혀 별개의 2개의 건물이 로비로 연결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심포니홀의 내부 설계가 끝난 다음에야 ICC를 설계했고 공연장도 음향설계부터 시작된 것이어서 ICC보다 심포니홀에 우선권을 준 셈이다.

극장과 음향설계의 컨설턴트는 미국 ARTEC사의 수석 디자이너 러셀 존슨이 맡았다.

그는 음향 뿐만 아니라 홀의 크기.모양.좌석수.발코니의 수와 넓이 등 극장의 전체적 구조까지 결정했다.

건물의 크기.좌석수 등 중요한 변수를 건축주가 결정한 다음 음향 설계를 맡기는 대부분의 공연장과는 달리 음향 컨설턴트에게 극장 설계를 맡긴 것이다.

버밍엄심포니홀은 러셀 존슨의 '작품' 이나 다름없다.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이 무대에 서보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영국 최고의 클래식 공연장은 물론, 세계에서 음향이 좋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콘서트홀이다.

오죽하면 이탈리아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이 공연장을 밀라노에 그대로 옮겨 놓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을까.

천정을 높이고 발코니 좌석을 최소한으로 줄여 말발굽형과 직사각형 공연장의 장점만을 도입했다.

공연장 내의 모든 기둥은 원형으로 설계했다. 객석 출입구가 뒷편이 아니라 좌우에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좌석수도 2천2백61석으로 대부분의 심포니 전용홀보다 적은 편. 천장에 달려 있는 음향반사판은 무대의 연주자들이 자기 소리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해 치밀한 앙상블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ARTEC사는 버밍엄심포니홀 뿐만 아니라 뉴저지공연예술센터(NJPAC.1997).스위스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1999), 미국 댈러스 모튼 메이어슨 심포니센터(2000), LG아트센터(1999), 필라델피아 공연예술센터(2001)의 음향설계를 맡았다.

컨벤션센터 내에 있다는 특성 때문에 버밍엄심포니홀에서는 관현악.실내악.독주회 등 클래식 뿐만 아니라 가끔 시민들을 위해 록.팝.재즈.코미디 공연도 열린다.

벽면에 저주파 흡음실을 설치해 마이크를 사용하는 록공연 등에서는 문을 열고 클래식 공연에서는 문을 닫아 음향을 조절한다.

버밍엄심포니가 심포니홀 개관 10주년을 맞는 내년에 준비한 행사는 '영국의 꿈' 페스티벌. 행사제목에서도 새로 갖게된 문화공간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이 엿보인다.

버밍엄=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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