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업계 "옥석 안가리면 모두 죽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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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현준.진승현 게이트' 와 같은 대주주들의 잇따른 불법대출 사고로 금고업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자산 9천억원을 넘는 업계 3위의 동아금고가 예금인출 사태를 견디지 못하고 당국에 자진 영업정지를 신청했다.

동아금고는 특별한 불법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시장에서 유언비어가 나돌면서 피해를 봤다.

H금고 관계자는 "아무리 큰 금고라도 소문만 잘못 나면 그냥 무너질 수 있는 상황" 이라며 "감독당국이 서둘러 옥석(玉石)을 가려줘야 공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 위기감 확산〓동아금고 사태가 미치는 파장은 정현준게이트의 동방금고나 진승현게이트의 열린금고에 비해 훨씬 더 크다고 업계는 말한다.

두 사건은 탈선한 벤처기업인이 금고 자금을 꺼내 정.관계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으로 사회적인 파장은 컸지만 금고업계 자체에 미친 충격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된 동아금고는 수신만 7천1백53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금고인 데다 지난해 업계 2위인 오렌지금고(옛 국민금고)를 인수, 계열사에 편입시겼다.

두 금고를 합하면 자산만 2조원이 넘어 웬만한 지방은행을 능가하는 사실상 업계 1위의 초대형 금고다.

동아금고는 지난 7~8월 중 대주주가 유가증권에 투자했다가 5백억원 가량의 손실을 입었고 이같은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면서 지난달 예금인출 사태가 일어났다.

지난달에 8백억원이 인출된 데 이어 지난 8일에만 4백50억원의 인출 요구가 몰려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들어서만 28개 금고가 영업정지 등 사실상 퇴출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말 25조원에 달하던 금고업계 수신 규모도 11월말 현재 18조5천억원으로 6조원 이상 줄었다.

◇ 정부대책 나온 배경〓정부는 '우량' 판정을 받아온 동아금고의 영업정지가 업계 전체로 번질 경우 가뜩이나 취약한 자금시장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보고 휴일인 10일 긴급대책을 내놓게 됐다.

지난달 29일 발표한 금고 건전성 대책이 출자자 대출 등 고질적인 금고의 불법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번 대책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예금인출 차단을 골자로 하고 있다.

1조원의 긴급 유동성 지원 외에 현재 진행 중인 금고업계 검사도 오는 14일까지 서둘러 마무리하기로 했다.

검사와 관련된 루머로 고객들의 동요가 심하다는 업계의 진정을 받아들인 것.

한편 동아금고의 계열사인 오렌지금고에 대해 금감원은 "서로 차단벽이 철저히 설치돼 있어 예금인출 사태만 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 고 덧붙였다.

◇ 약발 받을까〓자금난에 처한 금고에 자금을 긴급 지원하고 예금자의 심리적 불안을 덜어주자는 게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내용이 빈약한 데다 영업정지 중인 금고의 소액예금 지급한도도 확정되지 않아 효과가 의문시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금감원은 당초 2천만원 한도 내에서 영업이 정지된 금고라도 예금을 내줄 방침이었으나 금고자산의 고갈을 우려한 예금보험공사의 반대로 한도를 5백만원 정도로 낮추는 선에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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