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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소리] 관음증만 탓할 수 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백지영 비디오 유출사건을 보도하는 일부 언론은 한편으로 눈물 지으며 사과하는 어린 가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론 우리를 관음증 환자로 내몰고 있다.

白양이 무엇을 잘못해서 저렇게 사과를 해야 하나. 성인이 할 수 있는 성행위를 한 것이 사과할 일인가.

그녀의 비디오가 유출된 것이 그녀의 잘못인가. 오히려 한 개인의 사생활을 마음대로 공개한 언론이 잘못한 것이 아닌가.

이번 사건은 일부 언론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白양 비디오 유출 사실을 특종이라고 보도하면서, 그 초점을 비디오 유출 및 유포자에 대한 지탄이 아니라 白양의 사생활 공개선전에 두었다.

게다가 金모씨를 인터뷰해 특종이라고 자랑하는 일부 방송은 또 어떤가? 한 개인의 인권을 묵살하고, 구독자 및 시청자 확보에만 열을 올리는 언론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게다가 언론에서는 우리를 인터넷에 떠 있는 정보를 보았다고 해 관음증이라고 일축해 버리는 사회 일각의 주장을 옹호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분위기로 볼 때 얼마 전 발생한 吳양 사건에 대한 마무리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사생활 공개는 분명히 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인권침해를 당한 개인은 여전히 지탄받아야 하고 인권침해를 저지른 악덕 사업주는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우리는 그 사이에서 관음증 환자로 간주되고 있다. 우리는 왜 이런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白양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더욱 슬픈 현실은 白양 비디오 사건에 관련된 金모씨의 행위다. 그는 자신의 사생활이 공개된 사실에 대해 白양과 함께 피해자가 돼 흥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잘못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이 사생활 공개에 의한 피해자임도 모르고 있으니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가□ 더욱이 비디오를 유출시킨 사람은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한다.

한 개인의 인격을 무참히 짓밟아 돈을 번 악덕 사업주 찾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언론은 우리가 白양 비디오를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다면서 관음증을 걱정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악덕 상행위를 한 사람은 편안히 돈방석 위에 앉아 비디오를 찾는 관음증 환자인 우리들에게 소리치고 있다.

"너희가 비디오를 찾으면 찾을수록 나는 돈이 들어온다. 이 멍청이들아!"

다시 정리해 보자. 사생활 공개로 인해 인권 침해를 당한 白양, 인권 침해를 당했는지도 모르는 金모씨, 인권 침해행위로 엄청난 돈을 번 악덕 사업주, 이 어처구니없는 사회적 현실 앞에 우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의식구조가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 가히 짐작이 가리라. 사생활 공개에 의한 피해는 白양만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에게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사이버성폭력피해신고센터에 신고되고 있는 사생활 공개에 의한 개인의 피해는 심각하다. 몰래카메라에 의한 피해는 집 밖의 공중화장실.비디오방.여관.호텔 등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피해자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 같아 사회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울뿐 아니라 죽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우리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거나 카메라 감지장치를 소지하고 다녀야 할 판이다.

악덕 사업주는 우리의 무지를 이용해 돈을 벌고 있고, 일부 언론은 우리의 무지를 악용해 구독자와 시청자 수를 늘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자기 돈 써가면서 이들한테 돈 벌게 해줄 이유가 없다. 단지 관음증 환자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인권침해가 무엇인지 고민하여야 하는 개인이 돼야 한다.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 몰래카메라로 부당이득을 취한 사람은 반드시 색출해 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일부 언론이 개인을 하나의 흥미거리로 다루기 전에 먼저 인권침해를 방지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

정부는 책임있는 자세로 불법행위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을 똑바로 봐야 한다.

이경화 <사이버성폭력피해신고센터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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