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문의 새 길] 15·끝. 생명윤리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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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21세기는 '생명과학의 시대'라고들 한다.4년 전 체세포 복제 기술로 복제양 '돌리'가 탄생한 것은 이제 해묵은 뉴스다.

기술적으로는 인간의 복제도 이미 가능해진 것처럼 보인다.올해 들어서는 인간의 유전자지도가 그려졌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이에 대해 “우리는 신이 인간을 창조한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에 들어섰다”라고 했으며,많은 과학자들이 “유전자 염기 서열 규명으로 질병의 원인 연구와 예방·치료법 개발이 한층 손쉬워졌으며,이것은 인간의 수명 연장과 생명의 신비를 규명하는 데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러한 첨단생명과학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의식은 어떠한가.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지난 8월초 영국 맨체스터의 한 병원에서 아랫배가 맞붙은 '샴쌍둥이'가 태어났다.각각 조디와 메리라는 이 쌍둥이는,조디의 몸통에만 있는 하나의 심장과 한쌍의 폐로 둘이 살아가고 있었다.

메리로서는 조디에게 생명을 의탁하고 있는 셈이다.그런데 담당의사들은 메리를 조디에게서 떼어내지 않으면 곧 메리뿐 아니라 조디마저도 목숨을 잃게 된다며 부모에게 분리수술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부모는 자신의 아기들을 분리하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니며,설사 둘 다 죽는다 하더라도 태어난 대로 두어야 한다며 의사들의 권고를 거부하였다.

의료진과 부모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사건은 법정으로 번지게 되었고,법원은 “살릴 수 있는 생명마저 죽게 내버려두는 것은 죄악”이라며 의사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영국의 의사들은 대부분 법원 판결에 찬성했지만,일부 의료윤리학자와 의료인들,그리고 가톨릭교회는 반대의견을 뚜렷히 밝혔다.

이 문제는 그 자체로도 생명윤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거니와,우리나라 의사들의 생명에 대한 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필자는 대학원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물었는데,한 내과전문의 수강생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사건이 아예 생기지 않으리라고 단언하는 것이었다.

자신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의사라면 대부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서 골치만 아프고 의사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않을 그런 소송에 휘말릴 리 없다는 이야기였다.얼마나 많은 의사가 그 내과의사의 말처럼 생명이 걸린 문제에 방관적일지 이 것만으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 생명에 대한 우리나라 의사들,나아가 국민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근대사회의 산물이자 근대를 근대답게 만든 중요한 동력이다.과학기술은 그 '도구적' 힘으로 고도의 생산력을 가능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찰적' 속성으로 인간 사회를 합리적인 모습으로 바꾸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즉 인간은 과학기술을 통해 자연에 대한 무지,인간과 사회에 대한 미몽에서 해방되는 길을 찾을 수 있었으며,또 그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획기적으로 드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과학기술은 초기의 역동성과 긍정적인 측면을 잃게도 되었다.예컨대 핵무기 제조를 통해 과학기술은 인류의 벗이 아니라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과학기술은 점점 일반인만이 아니라 분야가 조금만 다르면 과학기술자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것이 되었다.

종교가 소수 특권층의 손아귀에 놓일 때 인간 해방의 메시지가 아니라 인류를 억압하는 장치가 되듯이,과학기술도 신비화되면서 인간을 오히려 억압하고 소외시키며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괴물이 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과학의 모든 면을 부정하고 배격하는 '반과학'('신과학'이라는 외피를 쓰기도 하는)의 경향이 나타나 '과학만능주의'와 더불어 과학의 참 가치를 위협하게 되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대중교육에서도 우리의 과학교육은 '도구적 이성'의 측면만 강조한 나머지,그만큼이나 중요한 과학의 성찰적 속성은 소홀히 하고 있다.또한 '성장제일주의'와 '국가경쟁력'이라는 담론은 사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그러한 교육에 충직한 사람은 '과학만능주의자'가,거부하는 사람은 '반과학주의자'가 되기 쉬우며,그 점은 생명과학에서 특히 뚜렷하다.

유전자를 바꿔치기하여 생명의 설계도를 다시 그리고 또 그러한 생명을 무한정 복제할 수 있게까지 된 21세기의 생명과학은 그 놀라운 효능만큼이나 인간이라는 종(種)과 생태계 전체에,시·공간적으로 핵무기보다 더 끔찍한 폐해를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생명과학이,생명의 존엄성을 으뜸의 가치로 삼는 생명윤리와 융화하지 않을 때에 파멸의 시나리오는 현실화될 수밖에 없다.

'첨단생명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인간성과 생명의 존엄을 지킬 뿐만 아니라 생명과학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해서도,오직 성장과 발전이라는 키워드만이 아니라 그것의 윤리적·사회적 의미라는 맥락으로 생명과학을 파악해야 한다.

즉 '인간복제'와 '유전자변형(조작)'이라는 새로운 상황 앞에서 맹목적으로 열광하고 환호하거나,조건반사적으로 두려워하고 배격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생명윤리'와 '과학 본연'의 잣대로 냉철하게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이 점에서 생명과학과 생명윤리는 일부에서 생각하듯 적이 아니라 동맹군인 셈이다. <시리즈 끝>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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