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측근정치 청산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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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 권노갑(權魯甲) 최고위원 퇴진론을 둘러싸고 당이 내분조짐을 보이고 있다. 배후가 누구니, 그럴 수가 있나 등 계파간 분열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반성하고 자숙해도 모자랄 판에 권력게임식 내분의 불을 지피는 모습이 국민에겐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사람들이 난국 극복에 앞장서기는커녕 난국을 조장하고 있으니 지금 행태만으로도 퇴진 이유는 충분하다고 본다.

집권 민주당이 대통령 가신들에 의해 실질적으로 장악되고 있는 현 체제는 진작 청산돼야 할 과제였다. 현 정부 출범 당시 국민에게 약속한 정치개혁의 핵심은 정당개혁이었다.

이념정당이나 시민정당 등 선진형태의 정당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 정당 운영이 민주적으로 이뤄지는 정당 민주화의 기틀은 마련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어디에서도 그런 시도는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 의사결정 구조는 옛 동교동 시절 비서실 형태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이들에 의해 당이 좌지우지되니 1인 지배의 사당(私黨)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측근정치를 청산해야 할 첫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측근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그래도 비판은 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동교동계 측근들은 지금까지 충성심만 과시하며 줄세우기 정치, 투쟁과 대결의 구정치에만 안주해 왔다.

386세대를 비롯, 당내 신진인사들의 신선한 문제제기가 있을 때마다 입 틀어막기에 급급한 것도 측근들이었다.

국민에겐 건전한 비판으로 비치는 이번 당내 비판을 놓고 당장 파워게임적 시각으로 대처하는 모습부터가 옛날 그림이다.

국민의 눈높이까지 현재의 정치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구시대 정치관행에 젖어 있는 가신그룹은 전면에서 후퇴하는 게 바람직하다.

거기다 잡음은 왜 그렇게 그치지 않는가. 최근 권력형 비리 스캔들과 관련해 입길에 오른 것은 본인들이 억울한 일이라니 접어두자. 그러나 한 최고위원이 "공기업 인사나 당정 인사에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나돈다" 고 한 소리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오죽하면 '호가호위(狐假虎威)' 라는 소리까지 나왔을까. 최근 민주당 내의 잇따른 비판은 민주당과 현 정부가 새롭게 태어나려는 발전적 과정이라고 본다.

아직도 어딘가엔 성역이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현재까지 개진된 내용만이라도 제대로 소화.반영하길 기대한다.

우리는 동교동계 내부 갈등엔 관심이 없다. 누가됐든 동교동계는 대통령의 측근세력이다.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하며 무엇보다 대통령의 개혁 도정에 걸림돌이 돼선 안될 것이다. 당내 비판을 권력다툼으로 확대 재생산할 게 아니라 스스로 용퇴해 권력의 사물화를 막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그 길이 대통령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봉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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