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적자금 제대로 썼나] 4. 관리·감시 시스템도 엉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공적자금 투입 후 해당 금융기관에 대한 성과평가(모니터링)는 금감위와 예보가 해당 금융기관과 체결한 경영개선약정(MOU)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재경부는 어떤 식으로 MOU를 체결하고 그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전혀 소관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 (재정경제부 이종구 금융정책국장)

"비서실은 그런 일(공적자금 사후관리)을 하지 않는다. 금감위와 예보가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 (청와대 경제수석실 양천식 금융담당 비서관)

일단 사후관리 책임은 금융감독위원회에 있는 것 같다. 그쪽 말을 들어보자.

"공적자금은 재경부 소관이다. 공적자금을 우리가 왜 관여하나. 우리는 금융 구조조정작업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곳이다.

최근 통과된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을 누가 만들었느냐. (금감위)위원장도 법안내용을 신문 보고 알았다고 하더라. 재경부는 권리만 있고 책임은 없다는 건가. " (금감위 간부, 익명 조건으로 말함)

남은 곳은 예금보험공사밖에 없다. 다행히 여기서 자신들이 그런 일을 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은 체결된 MOU에 따라 일들이 진행되는지 분기별로 검사한다. 이때 예보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보고서를 받고 필요하면 현장 확인도 한다. " (예금보험공사 박승희 이사)

재경부.금감위.청와대 경제수석실. 외환위기 이후 주요 경제정책을 끌고온 3대 축이다. 그러나 공적자금 집행 이후 관리.감시는 누가 맡아왔는지 물어보는 질문에는 모두들 '우린 아니다' 는 입장이었다.

서강대의 한 교수는 "1백10조원이면 한해 나라 예산과 맞먹는 엄청난 돈이다. 이런 돈을 집행하고도 사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니 그저 놀랄 뿐" 이라고 말했다.

◇ 업무체계 어떻게 돼있나=그동안 공적자금 관련 정책은 금감위와 재경부가 공동으로 맡아왔다. 그러나 실질적인 결정권은 금감위가 행사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재경부는 '얼굴마담'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는 대부분 두 기관이 시키는 대로 하는 쪽이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터졌을 때 책임소재를 가리기 쉽지 않았다. 김민석 의원(민주당)은 "공적자금 관리가 재경부와 금감위로 이원화돼 있는데다 이를 총괄하는 조직도 없었다" 고 지적했다.

정부는 뒤늦게나마 대안을 마련했다. 내년부터 재경부에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신설하고 그 안에 사무국도 두어 공적자금 문제 전반을 심의.조정하겠다는 것이다.

◇ 안지켜도 그만인 경영개선약정=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경영개선계획이 약속대로 이행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는 이를 제재할 조항은 없었다. " 금감위 연원영 상임위원의 말이다.

"지금까진 경영개선을 촉구하거나 여러 상황을 감안해 경영진의 퇴진을 요청하는 정도" 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경영개선 노력이 부진해 물러난 금융기관장은 없다. 위성복 조흥은행장이 비슷한 이유로 한번 물러나긴 했으나 곧 복귀했다. 공적자금을 받은 금융기관들이 금감위와 맺은 MOU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제대로 공개되지도 않고 있다.

◇ 퇴출 금융기관 청산작업 왜 이리 더딘가=지난달 말 현재 퇴출로 인해 파산재단으로 넘어간 금융기관은 은행 5개, 종금 18개, 보험 5개, 증권 6개, 금고 42개, 신협 1백50개 등 모두 2백26개다.

이중 변호사가 단독으로 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된 곳이 1백82개다. 반면 공적자금 집행기관인 예보 직원이 단독으로 선임된 곳은 25개에 불과하며 변호사와 공동 선임된 곳까지 합쳐도 42개다.

전문가들은 "파산관재인이 변호사 일색인 이유는 법원이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관련 법에는 "예금보험공사의 임직원이 파산관재인 직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에 적합하다고 인정될 때 파산관재인으로 선임해야 한다" 고 규정하고 있으나 법원은 추천된 예금보험공사 직원을 거부하고 변호사를 선호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예금보험공사(FDIC)가 부실 금융기관의 파산관재인을 맡는 것과 대조된다. FDIC라는 기관 자체가 파산관재인이 되기 때문에 자체 전문가를 파견해 신속히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예보 관계자는 "파산 재단을 대부분 금융업무를 잘 모르는 변호사들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변호사가 파산관재인으로 있는 기관은 1차 배당(채권비율에 따라 자산.부채를 정산하는 작업)하는 데 17개월이 걸린다. 반면 금융권 생리를 잘 아는 예보 직원들은 평균 7개월 만에 1차 배당을 한다" 고 말했다.

◇ 부실기업 경영관리 몰라서 못한다=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한 건설업체 임원은 "채권은행에서 경영관리단이 15명이나 나와 있지만 건설업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도 없어 저런 사람들을 왜 파견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 말했다.

대우차 채권단의 한 운영위원은 "경영관리단이 자구계획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부당하게 자금이 지출되는지를 체크해야 하는데 솔직히 검사할 능력도 없다" 고 실토했다.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심상복 차장(팀장).정철근.정재홍.서경호(이상 경제부).이상렬.김현승.홍주연 기자(이상 기획취재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