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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나눔 나선 중·고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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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면

송다현양이 어린이들에게 영어로 책을 읽어주고 있다. 서울 송파어린이도서관에서는 매주 토요일 ‘북버디’들이 외국어로 동화책을 읽어준다. [황정옥 기자]

‘배워서 남 주자.’ 열심히 배우는 게 본분이지만 누군가의 훌륭한 선생님으로 거듭나는 학생들이 있다. 바로 학습 봉사를 펼치는 학생들이다. 작은 지식이라도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나눔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그들을 만났다.

글=최은혜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매주 프랑스어로 동화책 읽어줘요

“Je vais manger un enfant! dit le crocidile.(아이를 잡아먹겠다! 악어가 말했어요.)” 박나슬(켄트 외국인학교 9)양의 실감나는 동화 구연에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프랑스어로 들려주는 동화가 신기한 듯 하나둘 모여든 아이들이 박양 주위를 둘러싼다. 박양은 서울 송파어린이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언니·오빠가 읽어주는 외국 동화책’ 프로그램의 ‘북 버디(Book Buddy·책 친구)’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다가 초등 4학년 때부터 2년 정도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녔다. 덕분에 영어·프랑스어·한국어 모두 잘한다.

박양은 이 도서관이 운영되기 시작한 지난해 5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를 ‘책 읽어주기’에 할애해 왔다. 미리 책을 고르고 단어를 정리하고 연습하면서 수업 준비도 철저히 한다. 이제는 도서관 고정팬까지 생겼다. 박양은 “아이들이 좋아하면서 박수를 쳐줄 땐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며 “자신감을 얻고 어렵게 배운 프랑스어를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어 스스로에게도 도움된다”고 말했다.

일본어·중국어·영어로 번역 활동도

일본어·중국어·영어로 책을 읽어주는 북 버디들도 있다. 중3 때까지 일본에서 살았던 양수현(서울 창덕여고 1)양과 순수 국내파지만 영어책을 읽으며 실력을 쌓은 송다현(서울 잠신중 1)양도 토요일이면 도서관에 온다. 처음에는 동생을 앞에 앉혀 놓고 연습할 정도로 어려웠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노하우가 많이 쌓였다. 송양은 “내 경험과 소질을 살려 봉사할 수 있어 좋다”며 “외교관이 꿈인데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말하는 능력을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양양도 꿈이 외교관 또는 통역사다. 동화를 일본어와 한국어로 자유자재로 번역하며 읽어주는 일이 꿈에 다가서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양양은 “공부만 계속 하면 답답한데, 매주 한 번 아이들을 만나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가면 활력소가 돼 공부도 더 잘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송파어린이도서관에는 이들과 같이 외국어 특기를 활용해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이 200여 명이나 된다. 책 읽어주기는 물론 해외 도서관에 기증할 한글 동화책과 도서관 홈페이지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 등 곳곳에서 재능을 발휘한다. 조금주 사서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활동과 학생들의 봉사활동을 연계시키니 반응이 매우 좋다”고 설명했다.

새터민 학습 지도, 이주노동자 한글 교육

지식 나눔 봉사에 반드시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경북 동지여고 봉사 동아리 ‘위드 어스(With Us)’는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 가정 여성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새터민 가정 자녀들에겐 컴퓨터 사용과 기초 학습을 도와 지난해 전국 중고생자원봉사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정민희(2년)양은 “육체노동을 통한 봉사도 뜻 깊고 보람 있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봉사는 그 사람이 발전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특별한 기쁨이 있다”고 말했다.

정양은 또 “새터민 봉사의 경우 뭔가를 가르치기에 앞서 그들이 경계심을 풀고 마음을 열도록 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꾸준히 노력한 결과 이제는 다양한 국적·배경·연령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게 됐다. 김지수(2년)양은 “간단한 한국말도 못 하던 분이 혼자 시장에서 장을 보고, 새터민·이주여성 자녀가 낯선 학교와 수업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 기쁘다”며 “가르치는 동안 나도 낯선 언어와 문화를 배우게 돼 성장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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