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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좋은 선례 남긴 한전 파업철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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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전력 노사가 극적으로 절충점을 찾음으로써 파국을 면한 것은 정말 다행이다.

두 차례 파업을 연기한 데 이어 마지막 순간 파업철회를 선언하고 민영화 원칙을 사실상 수용한 노조측의 결정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이로써 한전 민영화 작업은 한결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한전노조 파업철회 결정은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며 대화와 타협으로 위기를 풀어가는 모범적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경제난국을 풀어갈 새 모델로 평가할 만하다.

한전의 파업 움직임은 5일로 예정된 한국.민주노총 공동시위에 이어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도시철도 노조 등 공공부문의 집단투쟁으로 이어지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었다.

그러나 한전사태가 극적으로 반전함에 따라 우려되던 '동투(冬鬪)' 도 영향을 받으리라 기대한다.

다른 공기업들은 물론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에 반대해 파업 중이거나 투쟁을 준비 중인 민간기업 노조들도 한전처럼 공멸(共滅) 대신 대화를 통한 상생(相生)의 길을 찾기를 당부한다.

정부와 대통령도 이번 일은 한국경제가 풀어야 할 핵심과제 중 하나인 노사관계가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착될 수 있는 계기란 점을 인식, 확실한 의지와 신념을 갖고 노사정책에 임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한전 노사간 이면(裏面)합의설이 끊이지 않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전 노사는 아직도 단체협약이 남아있는 만큼 이런 의혹을 불식할 확실한 입장정리를 해야 할 것이다.

지난 7월 금융노련의 총파업 철회 배경에는 정부와의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소문에 이어 같은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구조조정에 임하는 공기업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은 데다 정부 관리도 투명하지 않은 데 그 책임이 있다.

공공부문은 4대 개혁과제 중 가장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나마 정부가 성과라고 자랑한 것들도 상당수가 이면합의로 얼룩진 '눈가리고 아웅' 이었다는 증거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담배인삼공사의 경우 5백명을 줄이면서 1년 후 퇴직자를 재취업시키거나 자녀의 취업을 보장하는가 하면, 한국통신에서는 인력은 1만2천명이나 줄었는데 인건비는 오히려 22%나 늘어나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공기업에만 특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민간기업에서는 이미 강력한 인력감축이 이뤄졌으며 앞으로의 기업.금융개혁 과정에서는 더욱 강도높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판에 공기업만 이면계약으로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

정부는 이면계약설의 진위를 분명히 밝히는 한편 공기업들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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