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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바이러스와 반세기 (39)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39. 일본 세균전 주역의 반발

이 무렵 내가 관심을 갖게 된 분야는 세균전이다. 한탄바이러스는 공기로 전염되므로 급속히 확산할 수 있는데다 치명적인 독성마저 있으므로 세균전의 소재로 가장 적당했기 때문이다.

70년대말 내 연구결과가 공개되면서 물 밑에 감춰졌던 일본 세균전의 연구결과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대표 사례가 인간 마루타와 세균전 부대로 악명높은 만주 하얼빈 소재 일본 관동군 731부대다. 1936년 설립된 이 부대의 사령관은 이시이중장(中將)으로 그는 교토대의대를 졸업한 저명한 세균학박사였다.

그는 30년대초 유럽 시찰을 통해 서구의 발달된 세균학을 직접 체험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세균전에 대비한 전략을 세웠다.

그의 뒤를 이어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긴 이가 2대 사령관으로 부임한 기다노중장이다. 기다노중장 아래에서 유행성출혈열 연구를 책임진 이는 가사하라박사다.

그는 일본뇌염 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분리해낸 뛰어난 학자였다. 그러나 당시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전쟁에 이용했던 전시였으므로 그 역시 731부대로 차출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패망 직전 이들은 귀국해 잠적했으며 그동안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77년 9월 나와 친한 일본국립보건원 바이러스부장 오야박사를 통해 전보가 도착했다.

내가 유행성출혈열은 진드기에 물려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를 통해 호흡기로 전염된다고 발표했던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도쿄대의대 출신인 오야박사의 동창 중에 731부대의 2대 사령관인 기다노중장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나의 연구결과에 대해 이견을 제시했다는 것이었다.

731부대 연구진이 진드기를 갈아 주사로 원숭이 피부에 투여했더니 원숭이들이 모두 유행성출혈열에 걸렸으므로 공기감염이란 내 주장은 틀렸다는 것이었다. 이는 내 연구결과와 일치하지 않은 것으로 나도 그들의 과거 연구가 몹시 궁금했다.

나는 그를 직접 만나기 위해 여러 경로로 문의했으나 거절당했다. 80년 당시 이미 87세의 고령인데다 일본은 좌파운동이 극렬했던 때라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경우 세균전의 주역으로 테러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81년 나는 가사하라박사를 만나게 된다. 일본 도쿄에 있는 기타사토(北里)연구소의 바이러스연구부장인 마키노박사가 주선했다.

가사하라박사가 내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기타사토연구소는 일본 최고의 미생물연구소로 일본 미생물학의 태두인 기타사토박사를 기리기 위해 설립됐다.

기타사토박사는 19세기 독일로 건너가 오늘날 파스퇴르와 함께 세계 미생물학의 양대 거두로 추앙받는 코흐박사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코흐박사는 결핵균을 발견한 당시 최고의 미생물학자였다. 기타사토는 코흐박사 아래서 파상풍 독소를 중화시키는 항독소를 개발해내는 뛰어난 업적을 남기게 된다.

기타사토연구소에서 한가지 인상깊었던 것은 연구소 한 구석에 설치된 신사(神社)였다. 죽은 자의 영혼을 추앙하는 일본식 신사의 주인공은 바로 코흐박사였다.

생전 기타사토는 매일 이곳 신사를 찾아 자신의 스승을 기리는 참배를 했다는 것이 아닌가. 아이러니는 세균전의 주역인 731부대의 이시이나 기타노사령관은 모두 기타사토의 학맥을 이어받은 미생물학자란 점이다.

이들은 모두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음에도 당시 세균전 연구결과를 모두 미군에 넘김으로써 군사재판의 전범으로 회부되지 않는 특혜를 얻을 수 있었다.

가사하라박사는 그들의 행동대장쯤 되는 핵심 브레인이 아니던가. 비장한 심정으로 만난 가사하라박사는 내게 뜻밖의 소릴 했다.

이호왕 <학술원 회장>

정리=홍혜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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