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앞둔 온양재래시장. 가게마다 장을 보려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재래시장에서는 가격을 흥정하는 쏠쏠한 재미를 얻을 수 있다. [조영회 기자]
“새댁, 이건 참기름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먹어야 맛있어.” 시장 통로 중간쯤 자리 잡은 조영래(74) 할머니의 소쿠리 앞엔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장보고 돌아가는 길에 나물 한 줌씩 사가려는 사람들이다. 조 할머니는 시래기, 고사리, 유채 같은 것들을 펼쳐 놓았다. 할머니가 직접 손으로 다듬고 솥으로 삶아낸 것들이다. 손님이 ‘한 주먹 달라’고 하면 두 번 묻지도 않고 인심 좋게 비닐봉지 가득 넣어 준다. “이건 국에다 넣고 푹 끓여서 남편 먹여봐~” 요리조리 해먹으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스물일곱에 처음 시장에 나와 어느덧 반백년 세월을 보낸 조 할머니. 조 할머니의 소소한 정은 젊은 주부들에겐 유용한 정보가 된다. ‘할머니네 나물’의 인기비결이기도 하다. 나물 가득했던 할머니의 소쿠리가 바닥을 보이는 건 금방이다. 팍팍 퍼주니 금세 떨어진다. 그래서 한 쪽에선 계속 나물을 삶아내야 한다. “더 주고 덜 주는 게 없어. 그냥 막 퍼주는 거야.” 기본 2000원 어치를 사면 다섯 식구 며칠 찬거리로 충분하다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사람 간에 나누는 정 때문에 하는 일이니까 그렇지.”
나물할머니 가게에서 30m쯤 거리에 라한묵(48)씨네 떡집이 있다. 라씨는 항상 가게 문 앞에 서 있다. 거기 서서 단골들을 기다린다. 단골이 멀리서 걸어오는 것만 봐도 누군지 딱 알아 맞힐 정도다. 아는 얼굴이 반가워서 얼굴이 빼~꼼 마중 나온다. 단골이면 얼굴만 보고도 오늘은 뭘 찾는지 알 것 같다 했다. 왜냐? 단골이니까. 라씨는 꼭 몇 개씩 꼭 덤도 얹어 준다. 왜? 단골이니까. “누구는 오늘 돈이 없다면서 일단 떡을 달래유. 그러면 그냥 ‘그러셔유~’ 하지유.” 쿨하게 외상을 달아줄 수 있는 이유도? 단골이니까다.
1. 정육점을 운영하는 양홍일·김영선 부부가 설 명절에 팔 고기를 다듬고 있다. 2. 재래시장 좌판에 진열된 조기. 3. ‘지화자 떡집’한월연 할머니가 가래떡을 뽑아 보이고 있다.
라씨는 아침마다 떡을 뽑는다. 그날 뽑은 떡은 그날 파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날 아침에도 라씨는 막 뽑은 가래떡을 떡국용 크기로 썰어 봉지에 싸서 진열했다. 큰 덩어리는 8000원, 작은 건 5000원에 판다. “이번 설에는 단골 아닌 사람들도 찾아와줬으면 좋겠는데…” 설을 맞이하는 라씨의 바람이다.
재래시장에 장보러 나온 이덕순(58·여)씨는 오늘 제대로 호사를 누렸다. 커다란 바나나 한 묶음을 1500원에 샀다. “마트에 가면 어디 이렇게 주겠어요?” 아주 뿌듯한 이씨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제수용 사과는 4개에 만원, 배는 1개에 3000원이다. 발갛게 익은 홍시에도 눈길이 간다.
이씨는 다른 건 몰라도 과일과 채소는 항상 재래시장에서 산다고 했다. “시장이 마트보다 훨씬 신선하다”며 “귤 한 박스를 사도 맨 밑에 깔려 있는 것까지 다 상태가 좋다”고 말했다. “가격도 달라는 대로 여기서 대충 맞춰준다”고 했다. 그는 이날 단골집에서 과일만 2만원 어치를 샀다. “서로 애들 이름까지 다 외울 정도로 주인하고 친해요. 나는 여기서 그냥 믿고 사요.” 장에 나온 김에 과일가게 주인과 수다도 한 판 신나게 떨었다. 돌아가는 길, 장바구니는 무겁지만 마음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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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규 기자, 고은이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