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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유언비어 퇴치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사회가 어지러우면 유언비어가 난무한다. 물론 어지러운 정도에 따라 유언비어의 성격도 바뀌어 간다.

예컨대 "연예인 누구누구가 무슨무슨 몹쓸 병에 걸렸다더라" 와 같은 수준의 유언비어는 어떤 의미에서 매우 '정상적인' 유언비어다.

*** 국정 난맥이 자초한 일

왜냐하면 대중의 말초적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이 오히려 이런 식으로라도 대중의 관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즉 연예인에게 유언비어는 팬들로부터의 인기를 관리하기 위한 일종의 필요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유언비어는 사회통합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예컨대 "어느어느 기업이 퇴출당하지 않은 이유가 누구누구의 봐주기 때문이다" 라는 소문이 돌면 개인적 차원의 명예는 물론이고, 정부의 정책 자체에 대한 공신력이 떨어져 전혀 질서가 유지되지 않는다.

사회 지도층 인사에게 필요한 것은 인기의 관리가 아니라 공인으로서의 모범이다. 그래야 보통 사람들이 지도층을 믿고 따를 수 있다.

연예인이 대상이건 혹은 사회 지도층이 대상이건 유언비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어느 시대건 어느 사회건 어느 정도의 유언비어는 어차피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의외로 대답은 단순하다. 진실을 알리면 된다. 유언비어의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면 그 유언비어는 그 자리에서 증발한다.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 유언비어가 독버섯처럼 자란다.

경찰의 단속으로 유언비어가 없어진다면 동서고금의 독재정권이 왜 모두 무너져 내렸는지를 다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유언비어를 단속하는 경찰을 가지고 있지 않은 독재정권이 있었던가.

유언비어의 구조적 조건은 그대로 놔두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을 단속해 유언비어를 없앨 수 있다면 독재는 영원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을 은폐하는 독재가 바로 유언비어의 온상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권의 챔피언 김대중 대통령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유언비어를 경찰이 단속한다고?웃자고 하는 이야기일 뿐이기 바란다.

최근 유언비어의 원인은 국정의 난맥이다.

경찰이 예시한 단속대상 유언비어 몇 가지만 검토해 보자. "대북문제에 매달리다 경제가 어려워졌다" "김용갑 의원의 '민주당은 노동당의 2중대' 발언은 사실이다.

" 이런 유언비어는 사실 전혀 유언비어가 아니다.

정부의 최근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우리 사회 상당수 구성원의 과장된 표현방식일 수 있다. 문제가 그렇다면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설득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정부가 자신이 있다면 전후좌우 사정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의 확실한 동의를 요청해야 한다.

만약 설득에 자신이 없다면 정책의 추진을 유보해야 한다.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통해 진실을 가지고 야당과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 정보 투명하게 공개해야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유언비어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상황의 진전을 살펴보자. 우선 소위 유언비어가 돈다. 즉 누구누구가 무엇을 하는 동영상 파일이 떠다닌다는 소문이다. 사람들이 확인을 한다. 나는 봤는데 너는 못봤느냐는 식이다. 유언비어가 사실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당사자의 해명이다. 스스로 유포시킨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당사자도 피해자라는 억울함을 밝힌다.

구체적인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 백지영은 그래서 오히려 떳떳하다고 볼 수도 있다.

결국 유언비어는 없어지고 인터넷의 익명성이 개인의 사생활을 파괴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른다.

분명 사회의 발전을 위해 토론이 필요한 쟁점이다. 유언비어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백지영보다 못한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유석춘(연세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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