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회 프런트] 일그러진 특권의식, 막말 부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판사와 검사들의 막말에 이어 이번에는 교사의 폭언이 문제가 됐다. 인권위는 8일 교사의 폭언 사례를 발표했다. 교실에서 고교 교사가 학생에게 “인간 쓰레기들, 바퀴벌레처럼 콱 밟아”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를 통해 나온 막말 논란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첫째로 엘리트들이다. 막말로 국민의 분노를 산 공직자들은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할 때 ‘권력 구조상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놓일 때가 많다. 판사와 원고·피고, 검사와 조사 받는 이, 교사와 학생은 우리 사회에서 명백한 ‘갑(甲)-을(乙) 관계’로 인식된다. 그릇된 특권의식이 막말을 낳는 것이다.

둘째는 닫힌 공간에서 이뤄졌다. 39세 판사가 68세 원고에게 “버릇없다”고 말한 공간은 법정이고, 검사가 “이 XX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라고 윽박지른 곳은 조사실이며, 교사가 학생에게 폭언한 곳은 교실이다. 갑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폐쇄된 공간에서 막말은 관행적으로 지속됐다.

관행은 사회적 습관이다. 개인의 예절만으론 모두 설명할 수 없는 뿌리 깊은 관습이 ‘막말 사건’의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서강대 김균(신문방송학) 교수는 ‘특정 분야에서의 민주화 지체’를 예로 들었다. 사회의 모든 부분이 같은 속도로 민주화되지 않으며, 특정 분야의 민주화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판사·검사의 하대(下待)와 막말을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용인한 측면이 있다”며 “아직도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영감이 됐다’고 말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법조계’의 독특한 성격을 거론한 이도 많다. 숭실대 강원택(정치외교학) 교수는 “전통적인 관료우위적 시각과 함께, 법을 어긴 사람을 다루는 일에 대해서는 인권의 문제(민주화)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른 사회 세력의 견제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판사와 검사는 전문가적 지위를 독점적으로 누리는 마지막 전문가 집단”(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이라는 지적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이런 분석들을 모아보면, 막말 논란은 사회적으로 독점적 지위가 인정되는 사람들이 닫힌 공간(법원·검찰청)에서 습관적으로 반복했던 현상이 겉으로 표출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교실에서의 폭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교사와 학생이 교실 안에 있다’는 말 자체가 힘의 주종 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막말 논란이 사회문제화된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보는 이도 많다. 연세대 황상민(심리학) 교수는 “고위 공직자의 하대와 막말에 대해 모멸감을 느끼거나 충격을 받은 것 자체가 그간 당연시되던 권력체계의 붕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도 “이번 문제는 언어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라고 했다. 법원이 재발방지를 위해 대책을 세우겠다고 발표한 것 자체가 변화의 한 단면이 될 수 있다.

막말 논란은 ‘공직자의 국민 서비스는 어때야 하는가’라는 논의도 낳고 있다. “국민에게 양질의 법률·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이 민주 사회가 바라는 진정한 엘리트 공직자”라는 지적이 바로 그런 것이다.

강인식·강기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