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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하천 이렇게 바꾸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왕숙천(王宿川)이 어디에 있나요. "

왕숙천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곳에 사는 정중권(32)씨는 조선 태조가 함흥에서 내려오다 8일간 숙식을 해 왕숙천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물론 오히려 이렇게 되묻기까지 했다.

주변에는 왕숙천의 발원지임을 알리는 팻말 하나 없었다. 이같은 사정은 경안천.탄천의 발원지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우리 하천들은 이처럼 지역주민들과 동떨어져 있다.

안양천이 흐르는 서울 구일역 부근엔 농구장.축구장이 있지만 여기서 운동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거의 찾기 어려웠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강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더럽고 악취가 심한데 무슨 운동을 하느냐" 며 손을 내저었다.

경사가 급한 콘크리트 사면, 관행적으로 계속돼온 물길 직강화.복개 등 무분별한 하천정비의 결과 하천에 근접하기 어려워진 것도 하천을 주민들과 격리시켰다.

취재팀과 안양천 답사를 동행한 경원대 정경민 박사는 "안양천의 일부 구간은 콘크리트 사면의 비탈이 너무 심해 바깥 세계와 하천이 완전히 별개 공간이 돼버렸다" 며 "비탈이 완만해야 하천의 자체정화 능력이 커'지고 주민들이 하천과 친숙해'질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양재천.안양천.여의천.학의천.수원천 등에서는 1995년부터 하천을 주민들의 친숙한 공간으로 돌려주기 위해 자연형 하천 복원사업이 이뤄지고 있어 다행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삼희 박사는 "돌.버드나무.갈대 등 자연재료를 이용해 호안을 가꾸고 물고기 등이 살 수 있도록 여울과 웅덩이를 조성하고 주민들이 하천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계단을 설치하고 곧고 바른 수로 대신 자연스럽게 구불거리도록 놔두는 것이 자연형 하천" 이라 설명했다.

건국대 박종관(지리학과)교수는 "하천과 시민의 거리를 좁히려면 하천을 자연공간으로 바꾸고 하천 둔치에 설치된 콘크리트 주차장을 연차적으로 철거하고 하천과 인근 주거단지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 하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고 제안했다.

'물사용량 일기' 를 10여년 이상 쓰고 있는 한양대 신응배(토목환경공학과)교수는 "우리의 하천들이 건천화로 신음하고 있는 만큼 하천사랑은 물 절약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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