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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김지하의 '사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지난 월요일 기자에게 항의성 e-메일 한통이 날아들었습니다.

제인 구달의 신간 ‘희망의 이유’일색이었던 지난 주 저희 신문과 동아·조선 등 3개 일간지 북 섹션(11월25일자)의 머리기사를 꼼꼼히 견줘본 독자 한 분이 신문사들이 서로 짜서 그런 지면을 제작했느냐는 뜻의 호된 질책을 하신 겁니다.

그 힐난의 뜻을 기자가 이해 못하는 바 아닙니다. 출판계의 요즘 화제도 그렇고,기자의 편집국 동료들도 최근 반복되는 ‘우연의 일치'가 뭔 영문인가 싶어 하니 ‘북섹션의 주말 대회전(大會戰)’에 대한 독자들 관심도 당연합니다.

여러 신간을 검토하다가 최선이라고 판단한 제인 구달을 ‘오늘의 일품요리’로 올렸으나 공교롭게도 3개 신문이 ‘침팬지 판’인 것을 확인해야 했던 기자로서도 느끼는 바 적지 않습니다.

우선은 피할 수 없는 자괴감(自愧感)입니다. 이를테면 한 중견 출판인의 지적이 귀에 쟁쟁합니다.“한국 신문들 종사자들이 심지어 멘탈리티까지 정형화돼 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우리는 다양한 각개약진을 보고싶다.”백번 옳은 말입니다.

기자도 바로 그런 다양성의 확보 만이, 올해 출판 환경의 가장 큰 변화일 수도 있는 북 섹션이 풍요로와지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봅니다.하지만 오늘만은 제인 구달의 경이로운 메시지를 다시 한번 음미하고 싶어 좀이 쑤실 지경입니다.

다시 지면을 꾸민대도 제인 구달을 머리기사로 올릴 심산인데,어쨌든 이 시대의 핵심 과학자인 제인 구달이 스스로 ‘영적(靈的)인 자서전’이라고 말한 텍스트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려 합니다.우선 퍼뜩 생각나는 것이 영감에 꿈틀거리는 시인 김지하의 생명운동론입니다.

김지하는 미학이론서 ‘예감에 가득 찬 흰 그늘’(실천문학사,1999)에서 다가올 시대 예술의 비전을 ‘우주사회적 공공성’이란 말로 요약합니다.

“전 우주와 지구에 대한 창조적 비전을 예술을 통해서 제시하지 않으면 안된다.사람,동식물,흙,바람등 우주 만물의 마음을 사귀고 접해서 감화시켜야 한다. 1천5백년전 그것을 말한 것이 바로 고운(孤雲)최치원의 ‘접화군생(接化群生)이다.”(96쪽) 다소 거창하게 들리는 시인의 말은 간명합니다.이 시대 모든 문제의 핵심에 있는 ‘자연과 대립된 인간’이라는 근대적 인간관의 폐해를 넘어서자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제인 구달이야말로 그 ‘접화군생’의 실제 사례라고 기자는 판단합니다. 그의 책은 침팬지를 포함한 ‘우주 만물과 사귀고 접하는’감동에 찬 사실들로 가득합니다. 이를테면 1960년 그는 아프리카 곰비 공원에서 침팬지가 모여사는 공동체를 발견합니다.

그 뒤 제인 구달은 캠프를 치고 관찰을 시작하는데, 서로가 무섭고 낯설어서 90m 거리에서 접근하는데, 무려 1년이 걸립니다.제인 구달은 그 뒤 침팬지 한마리 한마리의 얼굴을 익히며 이름을 붙여주며, 자신이 차린 밥상을 침팬지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놀라운 이변-김지하 말로는 ‘사귐’이죠-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합니다.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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