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돋보기] ‘국고 부당수령 누명’ 벗은 어린이집 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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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고보조금 부당수령 혐의로 경찰수사를 받아오던 아산의 한 어린이집이 검찰로부터 무혐의 판단을 받았다. 원장 A씨는 “3개월여 만에 누명을 벗게 된 것이 꿈만 같다”고 했다.

그동안 범법자로 몰려 ‘엄청난’ 정신적·경제적 피해를 겪은 뒤라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경찰이 수사 단계에서 섣부르게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주위 시선은 따가웠다. “나랏돈 떼 먹은 사람”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 같았다. 오랜기간 어린이교육에 힘을 쏟았다는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학부모들도 대하는 것이 예전과 달랐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3개월이었다. 이제 누명을 벗었다. 그러나 그 피해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아산경찰서는 지난해 11월 초 무자격 교사 3명을 채용, 인건비 등 국고보조금 1700만원을 부당 수령한 혐의로 아산 신창면 모 어린이집 원장을 입건,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혐의 단계에서 수사 사실을 외부에 알린 것이다. ‘모 어린이집, 국고금 부당 횡령’이란 제목으로 일부 방송·신문이 일제히 보도했다.

하지만 사건은 간단치 않았다. A원장이 반발했다. “해당 보육교사들이 자격증 발급 시기를 놓쳤을 뿐이지 실질적인 자격요건은 갖췄기 때문에 국고보조금을 부당 수령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하면서 보육교사 자격 논란이 벌어졌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2005년 영유아보육법 개정에 따라 2007년 12월까지 보육교사 자격증을 발급받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미 보육교사로 임용된 교사들이 자격증 발급 시기를 놓쳤다고 해서 모두 무자격 교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보육교사 자격증 미발급 상태로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는 보육교사들이 전국적으로 당시 수백여 명에 달한다는 사실까지 확인됐다.

경찰은 이같은 논란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기소 의견을 달아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의 결론은 무혐의였다.

이제야 누명을 벗게된 A원장은 그간의 서러움에 왈칵 울음을 쏟았다. 그는 “경찰 보도자료를 보면 신창면 ○○어린이집이라고 돼 있다. 어린이집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신창면에 국고보조금을 받는 어린이집은 한 곳뿐이다. 보육시설 종사자는 물론, 학부모들에게까지 알려지면서 악몽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당시 아산시청의 보육시설 담당자로부터 해당 어린이집 보육교사 3명은 무자격자이고, 부당 수령한 국고보조금이 1700여 만원에 이른다는 답변을 들었다. 보육교사 자격 여부에 대한 판단은 검찰의 몫이라 생각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말했다.

“기소 전 피의 사실을 공표는 위법이 아니냐”고 묻자 이 경찰 관계자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건 경찰의 업무이고 보도를 하고 안하고는 언론사가 알아서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검찰·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사람이나 감독·보조하는 사람이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공판 청구) 전에 공표하는 죄이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형법 126조).

장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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