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문화유산을 찾아] 5. 서울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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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서울 철도의 관문인 서울역.고속도로 개통과 항공교통이 일반화되면서 철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었지만 서울역은 1960년대까지만해도 명실상부한 ‘수도의 관문’이었다.

19년 서울역(당시 남대문역)을 출발한 열차는 전국에 독립운동선언문을 실어날랐고,순종황제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관리들도 지방순행시엔 이곳에서 특별전용열차를 이용했다. 60∼70년대엔 무작정 상경한 젊은이들과, 보따리를 이고지고 자식 찾아 올라온 시골 어머니들이 첫 발을 내디딘 곳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8·15 광복때는 태극기의 물결이, 80년 ‘서울의 봄’을 맞아서는 ‘독재타도’를 외치는 젊은 함성이 역앞 광장을 가득 메우는 등 곡절많은 우리 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의 역건물이 들어선 것은 1925년 9월30일. 7만여평의 대지위에 건평 5천2백29평 규모로 지어진 지하 1층, 지상2층의 역사는 붉은 벽돌이 주조를 이룬다. 중앙홀 상부는 비잔틴풍의 페디먼트돔으로 덮어 웅장함을 더했다. 설계자는 독일에 유학한 일본인으로 추정될 뿐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조선총독부는 본관 돔 아래서 올려다보이는 천정에 일장기를 그려넣었으나 광복후 이 자리에 태극무늬와 무궁화로 바꿔 그렸다. 역 이름도 이 때 경성역에서 서울역으로 바뀌었다. 현 문화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역사 2층 그릴은 국내 양식당의 원조.

이밖에 역사 정면에 지름 1·6m 규모로 설치된 대형시계 ‘파발마’도 명물. 한국전쟁때 3개월간 멈춘 것을 제외하곤 건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24시간 쉬지않고 움직이고 있다.

82∼83년 일부 내부공사,89년 민자역사 건설등이 이뤄졌고 2003년엔 고속철도 민자역사가 세워질 예정이지만 본관건물은 외양의 큰 변화없이 보존되고 있다. 81년 9월 서울시 사적 제 2백84호로 지정됐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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