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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3. 지하수 오·남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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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멀쩡하게 흐르던 강물이 서울 시내에 들어온 뒤 갑자기 반으로 줄어든다. "

중앙일보 취재팀이 지난 여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강근 교수팀과 함께 안양천 상류에서 하류로 이동하면서 8개 지점을 골라 수량을 잰 결과 발견한 사실이다.

안양시 하수처리장 부근에선 수량이 증가, 초당 7.11㎥에 달했으나 서울 구로구 구일역 부근에 이르자 3.58㎥로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李교수는 "영등포 일대 공장 지대에서 지하수를 마구 뽑아쓴 결과 이를 보충하기 위해 하천물이 지하로 빠져나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 설명했다.

대한지하수환경학회 한정상 회장은 "현재 국내 지하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과잉 채수와 오염 문제" 라고 진단한다.

무분별한 지하수 사용은 그렇지 않아도 도시화.난개발 등으로 건천화되고 있는 하천의 물을 더욱 마르게 할 뿐 아니라 지하수 수위를 더 낮춘다. 과거보다 더 깊게 땅을 파야 지하수를 얻게 된 것이다.

한강 지류인 왕숙천 상류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서영하(46)씨는 물이 주된 고민거리다. 그는 "주변 B아이스크림 공장에서 대형 관정(管井.우물)을 파고 난 뒤 강의 수량이 크게 줄었다" 며 "아이스크림 성수기인 여름에는 농사에 쓸 물이 부족해 생활하수가 섞인 더러운 하천물을 농업용수로 쓰는 형편" 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몇 년 전엔 맨손으로 박은 관정에서도 물이 나왔는데 "이제는 30m를 파도 물이 안 나온다" 고 말했다.

역시 한강 지천인 경안천 주변에 사는 김정자(40.경기도 용인군 모현면)씨도 "주변에 I대학이 생긴 뒤 오래된 관정은 쓸 수 없고 좀더 깊이 파야 물이 나온다" 며 "물이 부족해 외계리 위쪽에서는 수막농사를 지을 수 없다" 고 불평했다.

건천화가 극심해 YMCA 등 환경단체들이 주목하는 낙동강 지류인 감천에는 근처 들녘에 설치된 농사용 소형 관정만 줄잡아 1만여개. 들판에는 관정과 스프링클러의 행렬이 이어지고 관정 모터를 돌리기 위해 곳곳에 작은 전봇대들이 서 있었다.

농사철 가뭄 때면 하루 50t씩 퍼올리는 관정들이다. 이 관정을 통해서만 감천에서 하루 50만t의 물이 뽑혀지는 셈이다.

이곳 향토사학자 이근구(79)씨는 "전에는 가물면 강 바닥을 파 물을 고이게 한 뒤 수로를 만들어 논밭에 물을 댔다" 며 "지하수가 퍼올려지면 빈 공간은 다시 물로 채워지고 그러다 보면 감천으로 흘러들 물도 줄어들지 않겠느냐" 고 추론했다.

호남대 김민환(토목공학과)교수는 "마구잡이식 지하수 개발이 하천 건천화를 부른다" 며 "지자체들은 앞다퉈 지하수를 개발하기보다 댐에 저장된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용수 관로를 개설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1998년 말 현재 전국의 관정수는 총 97만4천78개로 일년 사이에 2만7천여개소가 증가했다. 98년 한해 전체 지하수 이용량은 37억t으로 97년보다 3.3억t 증가했고 이는 총 용수 이용량의 12%에 해당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적정 지하수 개발 가능량은 1백33억t. 연간 1백억t의 지하수를 더 뽑아 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어쩌면 아직 충분히 여유가 있는 지하수 자원이지만 일부 지역에선 생활.공업.농업용수나 아파트 공사 등으로 마구잡이로 뽑아써 지하수가 심각한 고갈위기에 처한 것이 문제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98년에 전국 2백30여개 시.군.구 중 지하수 이용량이 개발가능량을 초과하는 지역은 16곳이었다. 96년에는 초과한 지역이 세 곳에 불과했다.

대전 중구의 경우 개발가능한 지하수 양은 연간 74만여t. 그러나 97, 98년 각각 3백40만t, 3백30만여t의 지하수를 뽑아 썼다.

자연 상태에서 재충전 가능한 지하수 개발량을 매년 4.5배나 넘는 등 무리하게 지하수를 퍼내 쓰고 있는 것이다. 부산 동래구는 98년 개발 가능량의 3.5배, 광주 서구는 2.6배, 경기 부천시는 1.9배를 썼다.

현행 지하수법상 하루 양수량이 30t 이하인 경우 신고도 하지 않게 돼 있어 실제 뽑아 쓰는 지하수의 양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수를 이처럼 과다하게 사용할 경우 지역 내 지하수를 고갈시키고 지하 암반층 내 물을 함유하고 있는 대수층을 파괴한다.

땅밑의 지하수 환경이 완전히 교란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지하수가 부족하면 하천 주변 지하수의 수위가 낮아져 하천으로 흘러들 수 없게 된다. 오히려 하천수가 지하로 흘러들어 지하수 오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95~98년 전국의 지자체가 매년 2만5천~14만곳(폐공 제외)의 지하수 수질 검사를 실시한 결과 지하수 수질 기준에 못미치는 지하수의 비율이 2.1(95년)~7.1%(97년)에 달했다.

韓회장은 "이 비율도 지하수가 공업용수.농업용수 등 어떤 용도로 이용되느냐 하는 수질기준에 따라 적격 여부를 판정한 것이므로 먹는물 기준으로 판정할 경우 불합격률은 훨씬 높아질 것" 이라고 내다봤다.

기획취재팀=박태균.김현승.홍주연 기자

=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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