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에 앞서 2·8독립운동을 주도한 조선청년독립단원들(『사진으로 엮은한국독립운동사』, 눈빛, 2005). 앞줄 왼쪽부터 최원순, 두 사람 건너 장영규.가운데 왼쪽부터 최팔용, 윤창석, 김철수, 백관수, 서춘, 김도연, 송계백. 뒷줄왼쪽부터 한 사람 건너 변희용, 강종섭, 이봉수.
이뿐만이 아니었다.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의 선진국의 모범을 취하야 신국가를 건설한 후에는 건국 이래 문화와 정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우리 민족은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문화에 공헌함이 있을 줄을 믿노라.” 그들은 왕정을 되살리는 복벽(復辟)적 국권회복운동을 넘어 이 땅에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공화국을 세우고자 했다. “역사의 생생한 발언자적 사명을 띤 우리들 청년학도는 이 이상 역류하는 피의 분노를 억제할 수 없다.” “우리와 자손의 건전한 번영과 행복을 위하여 우리는 선두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4·19혁명 당시 나온 고려대와 연세대 학생들의 선언문에 잘 나타나듯, 2·8독립운동을 이끈 이들의 강렬한 선구자 의식과 민족애, 민주주의 정신은 일제하는 물론 해방 후 민주화를 이끈 학생운동의 정신적 추동력의 원형이었다. 앞서 산 이들의 희생을 딛고 독립과 민주화를 일군 오늘. “더없이 고귀한 민족의 생존”만이 아니고, 지구 마을 전체 차원에서 더불어 살기를 고민하는 열린 민족의식과 사명감으로 머리와 가슴을 가득 채운 세계 시민으로 거듭나는 것이 이 땅의 청년학도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일 터이다.
허동현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