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재 "영수회담 서둘 필요없다" 느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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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영수회담에 대한 청와대측의 기대에 고개를 돌렸다.

일요일인 26일 당사에서 "현재 영수회담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고 기자들에게 말한 것이다.

李총재는 "(민생)현안들은 국회가 정상화했으니 거기서 풀면 되고, 검찰 수뇌부 사퇴문제는 대통령에게 (23일 출국전화 때)촉구했으니 만날 필요가 없다" 고 설명했다.

이날 당사에 나오기 전에 李총재는 서울 문래동 노숙자들의 쉼터인 '자유의 집' 과 오류동 재래시장을 차례로 들렀다.

고위 당직자는 李총재의 이날 '민생 행보' 와 영수회담을 늦추는 문제에 대한 상관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민생을 명분으로 어렵게 내린 李총재의 독자적 국회 복귀 결정이 영수회담으로 희석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李총재는 자신의 등원 결심이 김대중 대통령과의 통화와 관계없는 것이었음을 기자들에게 강조했다.

"(출국전화에서)金대통령이 내게 국회정상화를 강력하게 요청했다는 얘기가 (여권에서)나오는 모양인데 전혀 그런 일 없다."

또 "지난번 영수회담에서 '두달에 한번씩 정례회담' 을 열기로 약속했는데 유효한가" 라는 질문엔 "그런 약속을 하긴 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귀국하면 할 일이 많을 것이다. 노벨상을 받으러 또 나가야 하지 않겠나. 이런저런 일들이 끝나야 만날 여유가 생길 것 같다" 고 말했다.

반면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노벨상 수상차 다음달 8일 출국하기 전에 李총재를 만나는 게 바람직하다" 고 했다.

두 사람이 빨리 만나 정치안정을 통해 경제위기를 헤쳐나가는 게 국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노벨상을 받으러 가는 金대통령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렸으면 한다" 며 조기 회담 무산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일이 꼬이자 민주당 서영훈 대표는 "(두 사람이)당장 만나서 합의할 게 뭐가 있겠나. 안 좋게 끝나면 모양새만 이상하게 된다" 고 김을 뺐다. 청와대측의 기대를 李총재가 외면한 것에 대한 불쾌함이 배어 나왔다.

한나라당의 장외투쟁 끝에 열렸던 지난 10.9영수회담이 두차례에 걸친 李총재의 요구에 따라 金대통령이 수용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던 것과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전영기 기자

사진=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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