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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무기는 개방성,차등은 있지만 차별은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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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 20면

첼시의 존 테리(왼쪽)가 헐시티와의 경기에서 헤딩슛하고 있다. 첼시는 러시아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주를 맡으면서 매 시즌 우승을 노리는 강호로 도약했다. 이번 시즌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승부의 세계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EPL 20개 팀의 승패와 생사가 판가름 난다. 경쟁은 맨유ㆍ리버풀ㆍ첼시 같은 개별 팀 단위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EPL의 경쟁 상대는 다른 나라의 리그다. 각국 리그 사이에서는 전쟁처럼 치열한 대결이 거듭되고 있다.

EPL CEO 스커다모어가 말하는 성공 비결

1970~80년대 유럽축구의 중심은 독일 분데스리가였다. 90년대 후반 이탈리아 세리에A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가 세계 축구의 엘도라도로 떠올랐다. 그러나 92년 혁신적인 리뉴얼을 한 EPL이 점점 세를 불리더니 2000년대 이후 세계 축구 최고의 ‘파워 하우스’가 됐다. EPL에는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는 ‘지하 벙커’가 있다. EPL 사무국이다. 중앙SUNDAY는 EPL의 최고경영자(CEO)인 리처드 스커다모어를 서면 인터뷰했다. 그는 답변서를 보내면서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EPL 사무국의 공식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중앙SUNDAY는 이 조건을 수용했다.

EPL은 세리에A나 프리메라리가와의 차별성을 중계권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다른 리그에서는 클럽들이 개별적으로 중계권을 판매한다. 그 결과 클럽 사이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난다. 빅 클럽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지만, 재정이 열악한 구단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EPL은 중계권을 묶어서 판매(Collective selling mode)하기 때문에 이런 병폐를 줄일 수 있다.”

프리메라리가는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의 양강 체제다. 세리아A에서는 인터 밀란, AC 밀란, 유벤투스가 리그를 주도한다. 거의 고착화된 구조다. EPL 역시 맨유ㆍ첼시ㆍ리버풀ㆍ아스널 4강의 존재가 뚜렷하다. 그러나 맨체스터시티처럼 구단의 과감한 투자로 단숨에 4강으로 치솟는 구단도 있다. EPL의 판도는 다른 리그에 비해 역동적이다. EPL이 중계권 판매를 하기 때문에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쉽고, 이를 합리적으로 배분함으로써 군소 클럽이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EPL은 중계권 배분 방식에 대해 “전체 중계권료의 절반은 20개 구단이 똑같이 나눈다. 25%는 성적에 따라 차등 배분하며 나머지 25%는 중계된 횟수에 따라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EPL의 CEO 리처드 스커다모어. AFP=본사특약

EPL의 또 다른 경쟁력은 개방성이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는 구단 내 외국인 선수의 숫자를 제한한다. 스페인은 팀당 4명 보유, 3명 출전으로 제한하고 이탈리아는 비유럽 선수를 1명만 보유할 수 있다. 세리에A에 외국인 선수가 많아 보이는 이유는 남미 출신의 이중국적 선수가 많기 때문이다. 독일 클럽은 독일 국적 선수 12명을 무조건 보유해야 한다. EPL에는 이런 제한이 없다. 아스널은 베스트 11은 물론 교체 선수 중에도 잉글랜드 선수가 한 명도 없는 가운데 경기를 하기도 했다. 이런 개방성 덕분에 잉글랜드에서 열리는 경기에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일 수 있다.

EPL은 세계를 시장으로 삼는다. 맨유는 2년을 주기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방문해 프리시즌 투어를 한다. 데이비드 길 맨유 사장은 “아시아는 열광적인 팬을 갖고 있다. 축구를 즐기는 아시아 팬들의 수준은 유럽과 큰 차이가 없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많은 아시아 선수가 유럽 무대에서 뛰게 됐다. 축구는 더 이상 유럽만의 스포츠가 아니다. 우리는 아시아를 유럽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PL은 개별 구단보다 더 공격적이다. 스커다모어 CEO는 2008년 “앞으로 잉글랜드 안에서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르는 38라운드가 끝나면 20개 구단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39라운드를 치르겠다”는 획기적이고도 야심 찬 계획을 밝혔다. 세계 시장을 더 공격적이고 직접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스커다모어의 구상은 세계 축구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잉글랜드가 2018년 월드컵을 개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견제구를 던졌다. 그러나 EPL 측은 “해외에서 개최하는 39라운드는 20개 구단이 열망하는 아이디어다. 이것이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좀 더 국제적인 요소를 갖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영역 확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EPL 때문에 K-리그가 위축된다는 지적이 있다. 많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가 비슷한 입장이다. 팬들은 EPL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고, 최고의 선수들은 자국 리그를 떠나 EPL로 간다. 그래서 EPL이 세계 축구 발전에 악영향을 준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EPL은 “K-리그를 응원할 수 있는 것처럼 누구나 프리미어리그를 응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EPL을 활용해 세계 각국의 풀뿌리 축구를 발전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서울에서도 대한축구협회와 영국문화원과 협력해 풀뿌리 축구 육성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EPL 코치로부터 각 지역 지도자들이 다양한 훈련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이 한국 유소년들에게도 전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지성과 이청용의 활약은 EPL로 하여금 한국 축구와 시장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EPL은 “박지성과 이청용은 모두 EPL에서 매우 인기가 높은 선수들이다. 이들 덕분에 한국에서 EPL의 인기가 올라갔을 것이다. 분명 한국 내 중계권 협상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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