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바이러스와 반세기 (3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34. 태국 마히돈왕자 의학상

기왕 상 이야기를 꺼냈으니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태국마히돈왕자 의학상 수상 스토리를 밝힐까한다.

많은 독자들이 이게 무슨 상인지 처음 들어봤다며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러나 태국마히돈왕자 의학상은 의학분야에서 노벨상 다음으로 가치있는 상으로 평가받고 있는 상이다.

태국왕실에서 태어난 마히돈왕자는 미국 하버드의대를 졸업한 의사로 태국의 현대의학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태국마히돈왕자 의학상은 그의 업적을 기려 의학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주는 상으로 92년 처음 제정됐으며 수상자에겐 5만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

94년 11월 당시 아산생명과학연구소장으로 재직중이던 나는 출근하자마자 비서로부터 낯선 전화가 왔다는 소릴 들었다.

내 비서는 영어에 능통한데 영어권 주민의 발음이 아닌 서툰 영어발음으로 태국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넘겨받은 나는 그가 태국마히돈대학의 나트교수임을 알았다. 그는 태국왕족 출신의 여의사와 결혼해 방콩에 있는 마히돈의대 병리학교수로 학장과 총장을 지낸 태국의학의 거두였다.

열대지방에 유행하는 전염병인 뎅기열 연구의 권위자인 그와는 20년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는 내가 말라리아 조직배양의 권위자인 미 록펠러의대 트레이저교수와 함께 94년 태국마히돈왕자 의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것이 아닌가.

기쁜 마음으로 수상을 받아들인다고 답신을 보내자마자 나와 아내에게 1등석 항공표와 함께 수상 안내장이 도착했다.

95년 1월 나는 태국항공기 편으로 방콕으로 갔다. 우리 부부뿐 아니라 내 연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지인들도 함께 갔다.

30년간 내 연구를 도와준 유선자씨 등 연구원, 안창남씨 등 예방백신개발에 도움을 준 녹십자 직원, 미국 유학중이던 나의 두 아들 성일과 근, 조교였던 백낙주씨 등 제자까지 모두 13명이 나를 수행했다.

방콕비행장에 도착했는데 비행장엔 왕실에서 마련한 헬리콥터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 출구에서 태국 외무부 의전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세계 최고의 호텔로 평가받고 있는 오리엔탈 호텔로 갔다.

호텔로 가는 길엔 왕실 전용 노란색 리무진을 탔으며 경찰 오토바이가 전후에서 에스코트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강의차 마히돈대학까지 갈 땐 강을 따라 왕실 전용보트를 타고가는 국빈대접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나는 유행성 출혈열 연구와 강의를 위해 전세계에 거의 가보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지만 당시처럼 호화롭고 사치스런 여행은 처음이었다.

마히돈대학총장과의 만찬, 한국대사관에서의 만찬, 마히돈대학병원의 시찰, 태국의학협회 방문 등 정신없이 나흘간의 일정을 보냈다.

95년 1월 21일 시상식은 태국왕을 대신해 자크리스리돈공주와 나와 트레이저교수에게 태국마히돈왕자 의학상을 수여했다.

수상식 다음날 나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태국왕실의 왕궁을 구경할 기회를 가졌다. 왕궁 속의 불교사원에서 자크리스리돈공주와 함께 코 앞에서 구경한 에메랄드 불상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왕실 구경은 보통 사람은 할 수 없어 나를 수행했던 태국마히돈왕자상 재단사무국장도 처음 구경한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76년 노벨의학상 수상자로 내가 초청한 미국립보건원의 가이듀섹박사 등 4명의 미국인 학자들이 나를 태국마히돈왕자 의학상 수상자로 추천했다고 한다.

모두가 어려운 이때 요란하게 대접받은 나의 스토리가 자칫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된다.

나 역시 학자라고해서 특별대우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학자를 존경하고 대접하는 분위기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안타까움은 든다.

이호왕 <학술원 회장>

정리=홍혜걸 의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