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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고릴라 마스크 쓴 그녀들, 남성 중심 미술사를 비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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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프랑스 화가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를 패러디한 ‘게릴라걸스’의 도발적인 포스터. 원래 이름은 ‘고릴라걸스’였으나 철자를 잘못 쓰는 바람에 게릴라걸스가 됐다. [마음산책 제공]

 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
게릴라걸스 지음
우효경 옮김
마음산책, 199쪽, 1만4000원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만 하나?’ 프랑스 화가 앵그르의 누드화 ‘오달리스크’를 비튼 이 문구, 사람 속을 슬쩍 긁는다. 고혹적인 뒤태를 한 알몸 여성 얼굴에는 시커먼 고릴라 마스크가 씌워졌다. ‘(미국 최대의 미술관이라 불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근대미술 부문에 여성 미술가의 작품이 5%밖에 걸려 있지 않은 반면, 이 미술관의 누드화는 85%가 여성을 소재로 한 것’이라는 문제 제기다. 꽤 불경하고 엉뚱한 해석이지만 한 번쯤 귀 기울일 만한 항변이다.

미니 스커트에 망사 스타킹을 신고 고릴라 마스크를 한 익명의 여성 예술가 모임 ‘게릴라걸스’는 1985년 미국 뉴욕에서 문화 전반에 밴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반기를 들고 태어났다. 모든 불평등에 분노하는 이들은 ‘(일상에 매몰돼 무뎌진)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화나게 하고 싶다’는 과격하면서도 소박한 소망으로 출발했다.

서양미술사에서 여성은 왜 위대한 예술가로 여겨지지 않았는가를 파헤친 꽤 도발적인 이 미술사 책도 ‘게릴라걸스’가 지난 25년 동안 펼친 활동 중의 하나다.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여성이기에 역사 밖으로 밀려난 여성 미술가를 되살려낸다. 말 풍선, 만화, 게릴라걸스 수사대 보고서, 가상 인터뷰, 편지 등 눈길 끄는 형식으로 탈 권위를 외치기에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색다른 미술사다. 옮긴이가 붙여 넣은 ‘한국의 게릴라걸스를 찾아서’는 짧으나마 우리 상황을 되새겨볼 수 있는 자극제가 된다.

게릴라걸스는 에필로그에서 ‘우리와 함께 하자’며 독자들을 초대한다. “당신이 사는 곳의 갤러리들과 미술관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우리에게 말해 달라. 편지를 쓰고, 포스터를 만들고, 문제를 일으키자!” ‘예술계의 양심’이라 자임하는 게릴라 걸스와 통하고 싶은 독자는 guerrillagirls@voyagerco.com(www.guerrillagirls.com)으로 접선할 수 있다.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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