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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종교와 과학의 제로섬 게임, 이제 그만두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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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신의 진화
로버트 라이트 지음
허수진 옮김
동녘사이언스, 736쪽, 2만5000쪽

종교에 향한 진화생물학 등 과학 쪽의 맹공격이 심상치 않다. 그런 국면을 보여주는 이 책도 진화론·기독교 사이에 형성된 전선(戰線)을 가운데 두고 터진 또 한 발의 포격이다. 사실 “지난 20여 년 동안 서양 지식사회에서는 과학과 종교가 각자의 무기를 업그레이드하면서 군비경쟁 식 진화”(장대익 등 지음 『종교전쟁』21쪽)를 해왔는데, 이 종교전쟁의 최선봉에는 생물학 거두이자,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가 버티고 서있다.

“여전히 진화를 의심하는가? 여전히 신의 설계를 맹신하는가? 당신과 나의 존재 이유, 모든 생물의 존재 이유는 진화이다.”라고 독전을 거듭하는 그의 책은 『만들어진 신』『지상 최대의 쇼』로 대표된다. 여기에 독설가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쓴 『신은 위대하지 않다』가 가세해 진화생물학 연합군을 형성했다. 종교 쪽은 전통적인 창조론과 함께 지적 설계론으로 재무장해서 철옹성을 구축했다. 지난해 국내저술 『종교전쟁』도 그 여파인데, 실은 종교전쟁은 ‘대리전쟁’의 혐의가 없지 않다.

즉 서구지성사의 갈등에 우리가 끼어든 모양새다. 사실 이 사안은 요즘 지구촌의 보편적 갈등의 한 축이라서 관망할 수만도 없다. 『신의 진화』도 종교 쪽에서 보자면 불경스러울 수 있다. 당장 “초월자 신이 어떻게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진화한다는 말이냐?”는 항변부터 나올 판이다. 저자는 한 술 더 뜬다. “구원을 약속했던 3대 종교(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534쪽)며 종교 일반을 비판한다.

즉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가 유일신을 섬긴다는 점에서 아브라함의 3대 종교로 설정하는 입장이다. 일신신앙은 “이브라함 신학의 최종 완제품”이라는 말도 한다. “신은 환영(幻影)으로서 등장했으며, 이후 전개되는 신에 대한 관념은 그런 환영의 진화과정”(13쪽)이라는 단정이다. 때문에 애니미즘 이후 종교의 발생과 전개를 ‘쿨하게’ 취급한다. 하지만 저자의 목적은 분명하다.

첫째 종교간 화해다. 둘째는 종교와 과학 사이의 화해다. 종교와 종교 사이,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남는 것이 없는 제로섬의 게임을 어떻게 그만둘까를 묻는다. 저자의 표현대로 ‘넌제로섬 게임’을 모색하는 목소리를 자임한 중재자 자격이다. 2001년 9·11사태 이후 종교 공존은 필수라는 화급한 문제의식인데, 역사는 문명 충돌 못지않게 화해의 역사도 많다고 설득한다. 종교와 과학 사이의 화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초심으로 돌아가 삶의 방향을 정하고 선악을 구분하는 일, 기쁨과 고통을 납득하도록 이끌어주는 데 둘은 목표를 함께 할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이런 중재자의 목소리는 양쪽에서 돌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논리적으로 보아 절충주의 혐의도 있고, 일부 아류의 목소리로도 들린다. 단 이 책의 미덕은 없지 않다. 도킨스·히친스처럼 매섭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는 저널리스트 출신. 하지만 자기가 진화생물학 진영임을 분명히 한다. 예전에 나온 묵직한 책 『도덕적 동물』의 저자라서 더욱 반갑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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