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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수니파 총선 불참 태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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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내년 1월 이라크의 총선은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인들의 20%쯤을 차지하는 아랍계 수니파가 이 선거를 보이콧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수인 아랍계 시아파보다 인구는 적지만 수니파는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시절 정권을 독점하는 등 상당 기간 이라크를 지배해 왔다. 수니파의 총선 불참은 선거 자체의 의미를 대폭 축소시키고 선거의 합법성에 큰 흠집을 낼 것이 틀림없다.

◆수니파 불참 선언= 뉴욕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미 수니 최대 계파의 하나인 '무슬림 학자 연합'은 선거 불참을 선언했다. 이 정파는 3000여개의 수니파 사원을 대표하고 있다. 지난주 미군이 사마라 지역에서 벌인 소탕작전에서 두 아이와 부인을 잃은 라드 라힘 아흐메드(50)는 "선거는 무슨 선거냐"며 격노했다. 그는 "가족을 모두 잃은 내가 어떻게 이 정부를 믿을 수 있느냐"고 했다.

최근 바그다드에서 열렸던 평화협상에 참여했던 팔루자 지역 지도자 이스마일 아브디드 파야드도 "이곳에서는 선거사무소를 운영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거 참여 장애물=사마라 지역의 수니파 정당 관계자는 "주민들의 냉소적인 태도와 폭력사태로 선거참여 계획이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의해 정권을 빼앗긴 수니파로서는 이번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이라크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고 있어 수적으로 열세다. 다른 두 계파의 선거 참여율은 매우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수니 무장세력이 관할하고 있는 지역의 치안 문제도 걸림돌이다. 선거에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극단 저항세력의 테러 목표가 될 수 있다. 공개적인 선거운동이나 대중집회가 어려운 상황이다.

◆참가 가능성 여지도=그러나 다수의 수니파 지도자와 정당들은 내심 선거참여를 계획하고 있다는 게 뉴욕 타임스의 보도다. 이라크 지도자들은 다음달 1일부터 유권자 등록이 시작되면 수니파들도 슬슬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총선이 연기되지 않을 것이 확실해지면 수니파의 투표율도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수니파의 참여도가 저조하면 아예 정치권에서 밀려나거나, 총선 후 수니파에 대한 엄청난 박해가 가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일부 수니 지도자들은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랍 민족주의자 운동' 지도자인 와미드 오마르 나드흐미는 "미군이 선거운동 기간 철군을 보장하거나 선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보장을 하면 자신을 비롯해 많은 수니파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나드흐미는 은밀히 정파의 결속을 다지고 연합세력과 접촉하고 있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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