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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이것이 해법 <1> 부산남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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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3일 오후 부산남고 박경옥 교장(가운데)이 1, 2학년 학생들과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교정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 교장이 부임한 지 3년 만에 부산남고는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부산=송봉근 기자]

학교는 학생 경쟁력의 밑거름입니다. 선생님들이 열정적으로 공교육을 튼실하게 만들면 사교육은 힘을 잃게 됩니다. 중앙일보는 학교 교육을 알차게 운영해 공교육의 모델이 되고 있는 전국의 초·중·고교를 소개하는 ‘공교육, 이것이 해법’ 시리즈를 연중 게재합니다. 좋은 사례를 많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부산시 영도구는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모여든 곳으로 아직도 생활 환경이 열악하다. 기초생활수급자의 비율이 부산의 15개 구 가운데 둘째로 높다. 형편이 나아진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가면서 1980년대 22만 명이던 인구가 지금은 14만여 명으로 줄었다.

섬의 남쪽에 공립 부산남고등학교가 있다. 학생·학부모·교사들이 외면하는 학교였다. 전교 1등을 해야 간신히 부산대에 진학했다. 영도구에서 성적이 좋은 중학교 졸업생은 위장전입을 해서 서구·중구지역 고등학교로 빠져 나갔다. 평준화 지역이지만 1지망으로 입학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 보니 학생은 갈수록 줄었다.

3년 전까지의 이야기다. 올해 부산남고 3학년 205명 가운데 서울대·연세대·울산과기대·부산대 등에 15%인 30여 명이 합격했다. 부산 지역 우수 고교와 비슷한 수준이다. 2007년의 재학생 540명을 1지망에서 절반밖에 못 채운 것과 비교된다. 지금은 학생이 619명으로 늘었다. 중구·서구 지역 중학교 졸업생까지 1지망으로 지원하는 인기 학교가 됐다.

3일 오전 방학 중인데도 부산남고의 190석 자습실은 빈자리가 없었다. 박홍권(55) 교감은 “3년 전에는 자습실에 서너 명만 있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지금은 보충수업이 끝난 방학 기간인데도 학생들이 스스로 온다”고 말했다.

수학 자습실에서는 10여 명의 자연반 학생이 수학 담당 부인자(55·여) 교사의 지도로 칠판에 문제를 풀고 있었다. 이형민(18·2학년)군은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친구들 앞에서 직접 설명하면서 문제를 푸니 완벽하게 이해된다”고 말했다. 부 교사는 성적이 좋은 학생을 모아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지도한다.

이 학교의 변화는 2006년 10월 교육인적자원부가 개방형 자율학교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 3월 박경옥(53·여) 교장이 부임하면서 불이 붙었다.

박 교장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공부하기’를 내걸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 계획을 세우고 달성 여부를 표시하는 학습 플래너를 써내도록 했다. 기본 자율학습이 끝난 뒤에는 오후 9시부터 2시간의 심야 자율학습 제도를 도입했다. 심야 자율학습 덕분에 2학년의 경우 사교육을 받는 학생 수가 2008년에는 151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99명으로 줄었다. 그는 성적이 좋은 학생보다 성적이 많이 올라간 학생을 격려한다.

학생 수가 줄어든 것에 주눅들지 않았다. 박 교장은 “학급당 학생 수가 26명이어서 더 충실하게 가르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는 교실 11개를 대자습실 3곳과 과목별 교실 6곳으로 바꿨다.

학생들에게는 꿈을 제시했다. 해마다 동창회가 내놓는 돈으로 성적 우수 학생 30명을 9박10일 동안 미국 아이비리그 투어를 보낸다. 성적이 많이 오른 24명은 2박3일 동안 일본문화 탐방을 간다. 꿈을 키워주기 위한 명사 초청 특강도 두 달에 한 번씩 연다. KAIST 정재승 박사와 베스트셀러 『젊은 구글러의 편지』저자인 구글 한국지사 김태원씨 등 20여 명이 학생들 앞에 섰다.

박 교장은 교사들도 바꿔나갔다. 아침마다 함께 교문에 서서 ‘등굣길 반갑게 맞이하기’ 운동을 하고 있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자신의 교육 목표를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에게 대놓고 “다른 학교로 가라”고 말한다. 3년 동안 적응하지 못한 40여 명의 교사가 전근을 희망했다. 빈자리는 교사 초빙공고를 내 희망하는 교사들로 채운다.

이 학교에는 학급 담임 외에 학생별로 과목별 담임이 있다. 과목 담임은 학생들이 필요한 과목을 1대 1 맞춤 지도를 한다. 이 학교 교사 52명 중 절반 정도는 오후 11시까지 남아 학생들을 돌본다. 대신 박 교장은 교사들 수업과 잡무를 줄여주고 자율권을 존중한다. 학년별·팀별로 건의하는 내용은 웬만하면 수용한다. 외부 체험활동을 늘리고 자율학습 때 대학생 멘토를 초빙한 것이 그런 예다.

박 교장은 “중요한 것은 교장·교사·학부모·학생들 간의 신뢰였다. 먼저 신뢰를 형성한 뒤 중·하위권 보통 학생들에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글=부산=김상진 기자, 사진=부산=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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