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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집 ③ 최종훈 작 - 서울 ‘상도동 골목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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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건축가 최종훈씨가 설계한 상도동 골목집. 1층의 바깥 벽은 노출 콘크리트, 2층은 목재널로 마감했다.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콘크리트에 따뜻한 목재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삭막한 도시에 자연의 숨결을 끌어들였다. [안성식 기자]

많은 이에게 ‘마당 있는 집’은 기억과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 갖은 꽃이 흐드러진 화단이 있는 풍경. 예전엔 여느 집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으나 ‘아파트 공화국’에선 언감생심이다. 서울 상도동 신기수(42·회사원)·허지은씨(40·보육시설 근무) 부부는 ‘지금’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 월급쟁이에,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이 있는 가족에겐 흔치 않은 일이다. 집 앞까지 차가 들어가지 못할 만큼 좁은 골목 안에서 있는 집, 그곳은 남편 신씨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다.

◆자연을 느끼는 집=“마당이 사시사철 변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즐거움이 가장 크죠. 부엌에서도, 거실에서도, 침실에서도 이 마당이 제일 잘 보여요.” 부인 허씨는 부부 침실 한 켠에 마주보고 있는 옷장 사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두 옷 장 사이에도 창문이 있다. 마당이 아니라 집 옆의 고즈넉한 담벼락이 보이지만 허씨는 “이 창이 예쁜데다 여름에 열어두면 무척 시원하다”고 말했다. 초등학생인 아들은 친구들을 데려와 마당에서 노는 일이 많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마당 있는 집을 신기해해요. 아들 친구들이 ‘너희 집엔 마당이 있으니 부자구나’한대요. 아이들한테는 아파트 평수보다 마당 크기가 더 중요한 거죠(웃음).” 마당은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부부는 집을 새로 짓고 나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일도 부쩍 늘었다.

30여 년도 더 된 옛 집은 낡고, 어둡고, 비가 샜다.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터’라 떠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2006년 10월, 부부는 건축가 최종훈 소장(41·NIA건축)을 찾아갔다. “미안하지만 많은 부탁을 했다”고 밝혔다. 비용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 아이들을 위해 친환경 소재를 써줄 것, 가구를 만들어줄 것….

최 소장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건축구조와 마감을 분리해 시공사를 정했다. 바닥은 합판마루 대신 천연 소재 마묘륨으로 깔았고, 밝은 자작나무 합판으로 거실장·책장·식탁 등을 짰다.

1층의 거실. 아이의 머리 위로 하늘이 보이는 투명한 유리 천창이 있다(왼쪽). 오래된집을 허물며 나온 기와는 버리지 않고 마당의 낮은 담장으로 썼다. [NIA 건축 제공]

◆추억과 함께하는 집=최 소장은 집주인이 갖고 있는 ‘오래 살아온 집에 대한 추억’도 존중했다. 집의 배치를 놓고 여러 가능성을 생각했지만 결국 전에 있었던 자리에 지었다. 오래 가꿔온 정원과 익숙한 풍경을 유지하게 해주고 싶었단다. 옛 집의 붉은 벽돌은 대문부터 현관까지, 거실 앞 마당 부분에 양탄자처럼 깔고, 기왓장과 대들보에서 나온 목재는 담장에 썼다.

2008년 6월 완공된 175㎡ 규모 2층집은 가족에게 새로운 추억도 만들어줬다. 허씨는 “집 짓는 과정 자체를 온 가족이 함께 즐겼다”며 “그래서 집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건축가는 처음에 단층집을 생각했지만 2층 방을 원하는 아이들의 꿈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직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2층으로 설계를 변경했다. 1층엔 부부 침실과 손님방이, 2층 거실에 서재와 두 아이의 방이 있다. 허씨는 “현관으로 들어오면 부엌과 거실, 가족들이 들락거리는 침실이 한눈에 노출되는 아파트 구조와 달리 가려지는 곳이 많다”며 “누가 찾아와도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이 집에도 불편함은 있다. 동네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고, 겨울엔 난방비도 부담이 된다. 하지만 집안에 충분한 빛을 들여주는 두 개의 천창, 방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그림액자 같은 창문, 항상 계절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마당이 주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다.

“집 짓는데 든 돈이 인근 30~40평 아파트의 전셋값 정도였어요. 약간의 불편, 감수해야죠. 아파트 생활이 채워주지 못하는 안락함과 풍요로움을 24시간 느끼며 사니까요.”

이은주 기자

◆최종훈(NIA건축 대표 )=1968년 서울 생.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졸업. 정림건축· M.A.R.U 근무. 주요 작업으로 좋은생각사람들 및 열화당 사옥(2002), 아모레 퍼시픽 부산지역사업부사옥(MARU공동작업·2008), NaruGlobal(2008), 용산공원 아이디어 공모(2009) 등이 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www.n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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