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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만난 시장 고수] 강신우 한국투신운용 부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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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한국투신운용 강신우(주식운용본부장·50·사진) 부사장은 한국 펀드시장의 산 증인이다. 1988년 옛 한국투자신탁에 입사한 뒤 91년부터 이제껏 펀드매니저의 외길을 걸어왔다. 그래서 그에겐 ‘한국의 대표 펀드매니저’ ‘펀드매니저 1세대’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지금은 추억 속에 묻힌 한국투신의 ‘신한국펀드 시리즈’와 현대투신의 ‘바이코리아펀드’가 바로 그가 직접 굴렸던 상품이다. 그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의 첫 직장이었던 ‘펀드 종가(宗家)’ 한국투신이 부실의 늪에 빠져 쓰러졌고, 자리를 옮겼던 현대투신도 공적자금을 받은 뒤 외국계 회사에 넘어갔다. 그가 운용했던 바이코리아펀드는 무리한 마케팅의 후유증으로 투자자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외국계 템플턴·PCA 운용에서 내공을 쌓은 뒤 2005년 한국투신운용(동원투신운용과 합병)으로 복귀한 그는 2008년과 2009년 연속 국내 최고의 수익률로 시장을 놀라게 했다. ‘중앙일보 2009 펀드평가’ 결과 한국투신운용은 대형펀드(순자산 1조원 이상) 부문에서 연 66.2%의 수익을 올렸다. 이는 미래에셋자산운용(53.2%)을 13%포인트나 앞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기 고수익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안정적으로 매년 상위 25%에 드는 성적을 내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강 부사장을 만나 그의 펀드운용 철학과 시장 전망 등을 들어봤다.

-2년 연속 최고의 수익을 올린 비결이 있다면.

“5년 전 한투운용으로 복귀한 뒤 조직 문화와 운용 시스템을 확 바꿨다. 그런 혁신 노력이 이제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 같다.”

-무슨 얘긴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이제 어느 운용사든지 펀드매니저의 자질은 엇비슷하게 좋아졌다. 문제는 조직 문화다. 우리는 내부 애널리스트의 기업 분석을 바탕으로 펀드매니저들이 끊임없이 토론하며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한마디로 개인기보다는 팀플레이 방식이다. 수익률이 처지는 펀드매니저가 나와도 따라올 때까지 격려하며 기다려 준다. 단기 수익률로 펀드매니저를 평가하거나 경질하는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조직원 간에 신뢰가 깊어졌고 수익률도 올라갔다.”

펀드매니저들 간의 내부 신뢰가 한투운용의 펀드에 대한 고객 신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올 들어 국내 주식형펀드 전체로 약 1조9000억원의 환매가 있었지만, 한투운용으로는 거꾸로 약 500억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운용 철학이라고 할까. 어떤 원칙을 갖고 고객의 돈을 굴리는가.

“우리는 시장 추세나 테마를 좇는 모멘텀 투자를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내재가치와 비교해 주가가 낮은 저평가 종목을 발굴해 푹 숙성시키며 기다린다. 단기적으로 수익률이 떨어져도 발굴 종목의 내재가치에 대한 믿음에 변화가 없는 한 팔지 않는다. 한투운용 펀드의 매매회전율이 업계 평균의 절반 이하인 이유다.”

-단기 시황에 개의치 않는다 해도 글로벌 경제와 시장의 큰 흐름은 읽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올 한 해 시장은 어떻게 흘러갈 것으로 보나.

“전체적으로 재미없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운용에 임하고 있다. 굳이 주가지수에 대입하자면 코스피 1500~1900 정도의 박스권을 상정한다. 글로벌 경제 흐름은 괜찮을 것으로 본다. 출구전략에 대해 걱정이 많지만 선진국들은 하반기에나 완만하게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이 앞서 긴축에 들어갔지만 부동산시장의 과열을 막는다는 점에서 길게 보면 긍정적이다. 중국의 내수시장은 긴축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을 보수적으로 내다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해에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제흐름까지 이미 지난해 주가에 앞서 반영됐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2000년 이후 증시를 보면 짝수 해는 나빴고 홀수 해가 좋았다. 가까운 예로 2004년과 2006년이 조정기였고, 2008년에는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경제의 큰 흐름에선 2008년을 제외하고는 나쁠 게 없었다. 문제는 직전 해에 주가가 많이 올라 휴식이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올해도 그런 맥락일 것으로 본다.”

-그래도 업종과 종목별 주가 부침은 심할텐데.

“역시 중국 쪽 수요가 왕성한 기업들이 잘나갈 것이다. 정보기술(IT) 중간 소재 분야가 대표적이다. 모바일 부품 관련 업체들도 유망해 보인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파급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강 부사장은 올해 국내 펀드운용사들 간에 진검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에서 상승추세나 하락추세가 분명할 때는 모두 엇비슷한 수익을 내지만, 옆으로 게걸음하며 출렁일 때야말로 진짜 실력이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부동의 업계 1위인 미래에셋과의 경쟁이 궁금했다.

-근래 미래에셋의 운용 성적이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경쟁자로서 이를 어떻게 보나.

“다른 회사 얘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다만 너무 압도적으로 큰 운용 규모에서 나오는 진통이라할까, 그런 게 느껴진다. 업계 2위인 우리 회사의 주식형펀드가 8조원 규모인데, 미래에셋은 이보다 다섯 배나 많다. 규모가 커진 만큼 운용스타일도 달라져야 할 것으로 본다.”

-과거 강 부사장이 몸담았던 한국투신과 현대투신이 운용 규모에서 부동의 업계 1위였던 적이 있지만, 결국 몰락했다. 두 회사는 과연 무엇이 문제였나.

“반성하는 심정으로 얘기한다. 당장 펀드를 많이 팔고 봐야 한다는 조직 논리에 휘둘렸다. 마케팅 파트의 입김에 휘둘려 단기 모멘텀 투자로 내몰린 적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펀드매니저들이 자주 교체됐다. 이런 상황에선 장기적으로 안정된 수익을 내기 힘들었고, 당연히 고객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그때의 뼈아픈 교훈이 나와 한국투신운용을 거듭나게 했다.”

-길게 보고 투자하려면 한국 기업들이 계속 잘나가야 할 텐데, 도요타 등 글로벌 1등 기업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한국 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리도 나온다.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재무적으로 튼튼해졌고, 무엇보다 오너 경영의 강점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품질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부품·하청 업체들과의 상생 협력 관계가 요구된다. 아울러 오너 가문의 3, 4세 경영을 맞아 기업지배구조 리스크를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겠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펀드매니저로서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은 무엇일지 물었다. 뜻밖에도 그는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말했다.

“좋은 종목을 발굴하기 위해선 물론 경제와 재무·회계 지식이 기본이다. 하지만 기업 실적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산업의 변화를 제대로 짚으려면 사람과 역사·철학에 대한 식견과 이해가 필요하다.”

국내 최고 펀드매니저의 노후대비 재테크는 어떨까. 그는 새로 생기는 여유자금은 모두 적립식펀드에 넣고 잊어버린다고 했다. 강 부사장은 소액 투자자들에게도 “적립식펀드로 우량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게 노후 재테크의 첩경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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