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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 열전] 전통유물 사재털어 수집…제주 강윤호 변호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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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天與不受反受其殃耳(하늘이 내린 뜻을 따르지 않으면 재앙을 얻을 뿐이다)' .

지난해 7월 강윤호(康允豪.66)변호사는 보물 569호로 지정된 안중근(安重根)의사의 친필유묵을 보고 한없이 울었다.

순국을 한 달 앞둔 1910년 2월 安의사가 뤼순(旅順)형무소에서 직접 쓴 유필의 내용이 그의 가슴을 울린 것이다.

安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이유와 순리를 역행하고 주권국가를 지배하려는 일본을 준엄하게 꾸짖는 내용, 또 그가 항일(抗日)에 나선 이유가 유묵에 모두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유묵을 소장해온 金모(86)씨를 만나 설득끝에 넘겨받은 康변호사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내려오는 내내 그 유묵을 가슴에 꼭 안았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거금 3억원이 들어갔지만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22대를 거쳐 제주에 사는 康변호사는 제주에서 법조인이라기 보다는 '문화박사' 로 통한다. 68년 사시 9회에 합격, 70년부터 춘천.강릉.서울에서 판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의 꿈은 고향 제주에 항일민족의식과 우리문화의 실상을 생생히 보여줄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다. 판사를 사직한 것도 그 한 이유였다.

그가 이같은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서울에서 판사로 재직하면서 인사동 고서화랑, 골동품상을 아내와 함께 다니면서부터다.

미술품에 대한 안목이 생기고 자꾸만 외국으로 사라져버리는, 국내에 있더라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문화재를 누군가는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갖게된 것이다.

78년 제주에서 변호사로 개업한 그는 주말이면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변호사로 벌어들인 수입은 거의 모두 고서화 등을 구입하는데 쏟아 부었다.

서울의 35평 아파트, 말년에 농사를 지으려고 구입했던 밭(3천평)도 모두 도자기와 민족열사들의 유품 등을 사는데 들어갔다. 골프장회원권도 97년 그의 손을 떠났다.

이렇게 모은 수집품이 서화 5백여점에 자기.장신구 6천점 등 6천5백여점이나 된다. 수집품 가운데에는 이토오 히로부미를 격찬한 이완용의 친필에서부터 민영환.이준열사의 서한.휘호, 음각형 고려청자, 청화백자, 고려범종에 중국.일본의 중세유물 등 다양하다.

그래서 그의 아파트는 발 디딜 틈이 없고 제주시 모처에 별도의 수장고(收藏庫)까지 만들어뒀다. 빚도 2억5천여만원이나 된다.

하지만 그는 즐겁다. 80년대초 박물관을 건립하려고 구입해둔 6천평의 대지가 아직도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란 직업이 내게 돈을 쥐어주더라구요. 조금만 있으면 제주의 후손은 물론이고 관광객들에게 보란듯이 내세울 박물관이 생길겁니다. 내 재산이 아닌 국민 모두의 재산으로 만들생각입니다." 제주토박이 康변호사는 민족박물관을 하루하루 만들어가고 있었다.

제주=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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