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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겉도는 아동학대 방지장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올해 열살인 소현이(가명.K초등3)는 지난달 27일 수도권의 L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졌다.

응급실로 실려온 지 6일 만이다.

주요 사인(死因)은 권투선수가 강펀치를 맞았을 때 같은 충격으로 생긴다는 뇌부종. 그러나 왜 다쳤는지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일부 주민들은 "진실을 밝혀달라" 며 학대 의혹을 제기했다. 소현이가 평소에도 엄마에게 구박을 당했고, 지난 7월엔 걷지 못할 정도로 매타작도 당했다는 것. 하지만 소현이는 장례식이 끝난 뒤 바로 화장됐다.

강원도 한 읍에 사는 민수(11.가명)군. 2년째 '동네 거지' 취급을 당하고 있다. 부모가 밥을 챙겨주지 않아 동네에서 얻어먹는 데다 몸에선 악취가 심해 또래로부터 '왕따' 신세다.

지난달에야 강원도 춘천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신고됐지만 부모가 면담을 거부하는 바람에 두차례나 찾아간 상담원도 별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읍사무소의 담당 공무원은 아예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동학대 방지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학대 사례가 전국에서 속출하는데도 대부분 신고조차 되지 않고 있다. 무관심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이 복합 작용해 신고를 꺼리는 것이다.

신고 후도 문제다. 조사에 나선 경찰이 가해자인 부모 말만 믿고 돌아서버리는가 하면, 자식을 때려 중상을 입힌 부모도 쉽게 풀려나오는 등 처벌도 약하다.

학대아동이 발견된다 해도 사후관리가 기껏해야 1주일에 한번 전화통화로 이뤄지는 바람에 학대 부모가 아동을 데리고 잠적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19년 만에 개정돼 지난 7월부터 시행중인 아동복지법은 ▶학대신고 의무화▶학대자 처벌 강화(5년 이하 징역형이나 1천5백만원 이하 벌금형)▶학대아동의 강제격리 등 획기적인 내용을 새로 담았지만, 현장에선 이처럼 먹혀들지 않고 있다.

신고 소홀은 통계로 입증된다. 10월 5일 아동학대긴급신고전화(1391)가 개통됐지만 10월말까지 신고는 1백78건으로 올 상반기 아동보호기관의 월평균 신고 2백45건에 못미쳤다. 교사.의사 등 신고 의무자들의 학대신고도 거의 없었다.

복지부는 전체 아동학대의 10% 미만이 신고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아동보호 인프라 부족도 학대방지장치 가동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복지부가 10월 지정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각 시.도에 1곳(서울은 2곳)으로 전국에 17곳. 90만가구당 하나꼴이다.

여기에 예산 부재(不在)까지 겹쳤다. 관련 예산은 내년에 9억여원이 책정됐을 뿐 올해는 한푼도 없다. 이들 기관과 별도로 아동복지지도원을 두게 돼있는 규정을 지키는 시.군.구는 71%밖에 안된다. 전국의 아동복지지도원 2백88명으론 각종 학대사례를 챙기기엔 역부족이다.

이명숙 변호사는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없어 처벌이 가벼운 데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세부 프로그램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 고 지적했다.

이상렬.김현승.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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