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명의 無로 바라보기] 게임의 세계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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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대통령 선거는 스포츠 경기보다도 더 흥미진진하다. 고어와 부시 둘이서만 벌이는 게임이 아니다.

미국이 두쪽으로 갈려 있다. 세계의 관전자들도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마음 속으로 한 후보를 선택하고 그가 이기기를 은근히 바란다. 자기가 점찍었던 후보가 이기면 기분이 좋고, 지면 속상하다.

어떤 이는 자기의 마음을 주었던 후보가 불리하게 되자 자기 자신이 낙선하는 것처럼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자기와 그 후보의 당락과는 아무런 직.간접의 이해관계가 없다는 것을 자신에게 애써 확인시키고는 그 게임을 잊어버리기로 작정한다. 두 후보와 함께 관전자 모두도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선에 카지노가 개장된 이후, 관광객들 가운데는 억대가 넘는 큰돈을 날린 이도 있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장기간 머물며 도박에 빠지는 이도 있다고 한다.

나는 카지노로 유명한 미국 동부 애틀랜틱시티에서 한 도반(道伴)과 블랙잭에 관해서 장시간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 도반은 일정한 법칙을 터득하고 그 원칙을 제대로 지키기만 하면 누구나 딜러를 누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차의 시범 플레이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그는 승리했다.

뒷날 그는 원칙이 없이 도박에 빠지면 패가망신한다는 교훈을 담아서 '엔트런스' 라는 제목의 소설을 펴내기도 했다.

나는 "원칙만 지키면 도박에서 이길 수 있다" 는 저 도반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물론 여러번의 게임에서 연달아 이기거나, 승패를 반복하더라도 평균 승률이 더 높을 수는 있다.

그러나 끝까지 계속 이길 수는 없다. 설사 1만번을 이긴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한번을 질 수가 있고, 그 한번의 패배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가 있다.

노름꾼이 불리한 것은, 카지노가 유리하도록 교묘하게 정해진 카드놀이 법칙 외에도 카지노는 무한한 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1원짜리 게임에서 1천번을 이기더라도, 1만원짜리 게임에서 한번을 지면, 크게 지는 것이 된다.

칩이 바닥날 걱정이 없는 카지노는 흔들릴 것이 없다. 그러나 한정된 돈을 가진 노름꾼은 흔들리게 되어 있다.

지면 져서 잘못 짚은 것을 후회하고, 이기면 더 많은 돈을 걸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거금을 걸고 이기더라도 카지노를 떠날 때까지 딴 돈을 지키기 어렵고, 설사 많은 돈을 집에 가져오더라도, 그 기억이 뇌리에 박혀서 반드시 더 큰돈을 카지노에 처박게 된다.

이 우주에서 우리를 노름꾼이라고 한다면 자연이 카지노가 될 것이다. 물론 자연이라는 카지노는 놀음하러 오라고 우리를 유혹하지 않지만, 우리가 스스로 '고어 대 부시' 의 대결과 같은 놀음거리를 만들고 그것에 베팅을 한다.

정선의 카지노에서와 마찬가지로 세상 카지노에서도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언젠가 꼭 지게 되어 있다. 딴 것은 반드시 돌려주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카지노와 세상의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되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이기면 좋고 지더라도 게임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개체로서의 '나' 라는 카지노 손님이 아니라, 우주 전체로서의 '자연' 이라는 카지노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그 주인의 재산이 된다. 따고 잃을 것이 없게 된다.

석지명 <법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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