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10시간] 가수 전인권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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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올해 마흔다섯. 서울생. 부친의 고향은 이북 함경도.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 때려치웠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음악은 가까이 할 기회가 없었다. "집이 가난해 전축 같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작은형의 기타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형에게 몇마디 배운 뒤 '딱 하루' 혼자 연습하고 집 앞 공원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

길 가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탄성을 질렀다. 그러다 동네 형의 손에 이끌려 그룹 '라스트 챤스' 의 보컬을 맡게 됐고 미군 부대 무대에 섰다.

그때가 1972년. 그의 노래에 클럽을 찾은 미군들은 모두 "꺼뻑 죽었다" .

81년 후배의 소개로 피아노를 치는 허성욱을, 83년엔 신촌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던 기타의 최성원을 만났다.

셋은 "우리만의 노래를 하자" 고 도원결의, 들국화를 결성했다. 이어 드럼의 주찬권이 가세했고 85년 9월 그가 작사.작곡한 '행진' 을 타이틀로 첫 음반을 발표했다.

가요계는 발칵 뒤집혔다.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이듬해 2집을 발표했다. 최고의 언더 그라운드 밴드로 인기를 누리던 들국화는 그러나 87년 돌연 해산했다.

"너무 가난했기 때문" 이다.

1집만도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80만장이 팔려나갔지만 음악 외엔 아는 게 없었던 그와 멤버들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피곤했다. 피곤은 짜증을 낳았고 짜증 속에서 음악을 계속 할 수는 없었다.

93년 새 멤버로 2기 들국화를 결성, '제발' 등이 수록된 앨범을 냈다. 97년 허성욱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지자 분신과도 같던 친구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의 뒷목에는 혹이 생겼다.

이 일을 계기로 원년 멤버들이 재결합을 추진했으나 여의치 않다가 지난 9월 마침내 재결합, 팬들의 성원 속에 컴백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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