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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공들여 쌍둥이 낳은 산모, 구급차 고장나 숨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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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4년간의 노력 끝에 쌍둥이를 출산한 여성이 응급실로 옮겨지는 도중에 구급차 고장으로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2003년 7월 결혼한 김모(36)씨는 지난해 4월 시험관 시술로 쌍둥이를 임신했다. 출산을 앞둔 지난달 21일 서울 강서구 M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던 도중 김씨의 혈소판 수치가 갑자기 떨어졌다. 그는 곧 입원을 했고, 다음 날 오전 8시50분 제왕절개 수술로 쌍둥이 딸을 출산했다. 김씨는 출산 후 회복실로 옮겨졌지만 산소포화도가 83%로 떨어졌다. 주치의는 경기도 일산에 있는 대형 협력병원으로 김씨를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병원 구급차 안에 있는 산소호흡기가 얼어 작동하지 않았다. 호흡곤란 증세를 겪고 있던 김씨를 산소호흡기 없이 옮길 수는 없었다. 뜨거운 물로 호흡기를 녹이는 데 10∼15분이 걸렸다. 김씨와 남편 계모(38)씨, 주치의 등 6명을 태운 구급차가 병원을 출발한 건 오후 1시25분. 그러나 10분도 채 가지 않아 이번에는 구급차가 도로 한복판에서 멈춰버렸다. 계씨는 “차의 시동이 꺼지면서 안에 있던 의료장치도 작동됐다 멈췄다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오후 1시42분, 주치의는 119에 구조요청을 했다. 출동한 119대원들은 일산 병원까지 가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며 인근에 있는 이화여대 목동병원으로 방향을 바꿨다. 김씨는 오후 2시10분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2시간여의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오후 4시5분 숨졌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구급차를 누군가 일부러 고장내지 않은 이상 책임을 묻기 어렵다. 하지만 출발 전 산소호흡기가 고장 나 있었던 점은 수사를 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현재 국과수에 김씨 시체의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M병원 관계자는 “산소호흡기가 얼어 있었던 건 맞지만 자주 있는 일이고 바로 녹였다”고 해명했다. 이어 “구급차는 지난달 13일께 정비를 받았는데 왜 멈췄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유감이지만 김씨가 운이 없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편 계씨의 형은 “동생이 괴로워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우리 집에서 지낸다”며 “임신했을 때 부부가 정말 좋아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아기들은 건강한 상태며 설이 지난 뒤 인큐베이터에서 나올 수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김진경·박정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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