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정몽헌 회장 딴 맘 먹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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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대건설에 30년 동안 몸담은 김윤규 사장과 3년도 채 안된 사원 김모씨. 두 사람은 각각 현대건설이 부도 위기에 몰린 사실을 한탄하며 최근 펑펑 울었다.

金사장은 1차 부도가 난 10월 30일 밤 집에 돌아가 통곡했다. 그는 "연말까지 영업이익이 8천억원, 상반기 중 해외 건설수주가 국내 기업 전체의 70%나 되는 회사를 이 지경으로 몰아붙일 수 있느냐" 고 한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사원 김씨는 최근 동료와 회사 근처에서 술을 마시며 "정몽헌 회장과 金사장을 싸잡아 욕하며 울었다" 고 말했다.

그는 "오너 회장 형제끼리 다투고 전문경영인들은 이를 부추겼으니 회사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당연하다" 고 주장했다.

한국 자본주의와 궤를 같이 한 53년 역사의 현대건설이 휘청거리고 있다. 현대는 8일까지 채권단에 내려던 추가 자구방안으로 더 이상 내놓을 게 없어 난감해하고 있다.

그러나 채권단은 이날 전체회의에서 연말까지 돌아오는 기존 대출금의 만기를 연장해주기로 했다. 따라서 현대는 이제 물건 납품대금 등 진성어음을 스스로 막아가야 할 상황에 처했다. 하루하루 부도라는 칼날을 아슬아슬하게 걷는 형국이다.

다급한 현대는 그나마 돈이 될 만한 계열사인 현대전자를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현대전자가 반발하고 나섰다.

현대상선이 갖고 있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전자 주식을 팔려 했더니 이번에는 현대상선 사장이 반대했다.

그러나 재계에선 이 부분에 의문부호를 던진다. 과연 오너 회장의 뜻이 확고한 데도 계열사가 반대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에서다.

현대상선과 현대전자의 지원 거부를 통해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은 현대건설이 잘못되더라도 형편이 낫고 장래성이 있는 두 회사를 살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오너인 정몽헌 회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 더 이상 현대건설이나 그룹 구조조정본부의 임원급이 나서 검토 단계의 자구방안을 언론에 흘려 여론을 살피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鄭회장이 직접 나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만이 현대가 살고, 한국 경제가 함께 살 수 있는 길이다.

김시래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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