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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더불어] 정신지체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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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1일 오후 8시 서울 강서구 발산동에 있는 정신지체아 시설 '교남 소망의 집' 지하실에 마련된 태권도장. 20여평의 공간에서 15명의 아이들이 우렁찬 기합과 함께 태권도 동작을 연습하고 있었다.

어정쩡한 기본자세, 기우뚱한 발차기 등 자세와 표정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눈빛은 사범 김화숙(金華淑.46.여)씨를 향해 빛났다.

공인 3단인 金씨는 1997년부터 이곳에서 1주일에 세차례 정신지체아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주부 자원봉사자.

"처음엔 싸우는 아이, 멋대로 날뛰는 아이 등으로 아수라장이었지요. 국기에 대한 경례만 한달 넘게 가르쳐야 했어요. " 金씨는 수십차례 시범을 보이다 발바닥.종아리에 숱하게 쥐가 났지만 단념하지 않고 일일이 아이들의 팔.다리를 들어주며 다가갔다.

칭찬을 아끼지 않고 껴안아주며 몇달간 호흡을 맞추자 아이들도 태권도를 흉내내며 金씨를 따르기 시작했다.

소망의 집 특수교사 노희정(盧嬉貞.여)씨는 "고집이 세고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던 아이들이 태권도를 배운 뒤 인사성이 밝아지고 많이 침착해졌다" 고 아이들의 변화상을 전했다.

金씨가 이들과 만나게 된 것은 큰 사범인 강서청소년회관 한규인(56)관장의 권유 때문이었지만 망설임을 접고 도복을 챙기게 된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갓 결혼했을 때 옆집에 나만 보면 좋아서 괴성을 지르는 정신지체아가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 아이가 너무 싫어 아이 엄마에게 이사가라고 짜증을 냈지요. "

金씨는 그 때의 자책감 때문에 한달이면 끝낼 과정을 소망의 집 아이들이 1년 넘게 끌어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金씨에게 보람을 안겨준 '작은 승리' 도 적잖았다. 金씨는 부모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겨우 흉내만 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태권도인의 잔치인 '태권도 한마당' 에 97년부터 특별 출연하고 있다.

어설프게 이어지는 산만한 동작을 보고 관람석에선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에 장내는 이내 숙연해진다고 한다.

그는 "정신지체아도 정성껏 반복 학습시키면 사회성을 키울 수 있다" 며 "집안에만 두지말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시켜야 한다" 고 조언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61개 정신지체아 특수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5천8백여명. 5백여명으로 추산되는 金씨같은 자원봉사자는 자신의 특기에 따라 에어로빅.서예.농구 등 특별활동을 지도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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