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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만들어 낸 최고의 발명품은 죽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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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2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예르바부에나 센터의 애플사 신제품 발표회장. 아이패드(iPad)라고 불리는 태블릿 제품이 투영된 거대 화면엔 뉴욕 타임스가 떠 있다. 거대 화면 왼쪽 아래엔 청바지에 검은 스웨터 차림의 스티브 잡스가 꼰 무릎 위에 두께 13.4㎜, 무게 680~730g, 9.7인치 태블릿PC를 올려놓고 시연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언제나 그랬듯이 특유의 과장법으로 “매혹적이고 혁명적인 기기”라고 선언했다. 800여 명의 참석자는 환호했다.

사진제공=웅진지식인하우스

죽음이 삶을 변화시키기 때문
“저급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파블로 피카소가 남긴 명언이다. 애플사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55)는 이 말을 좋아한다. 1980년 초반 제록스 연구소(XDC)를 방문했을 때 마우스 장비를 발견하고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도입했고, 수많은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통화기능과 문자메시지 기능만 열중하고 있을 때 잡스는 휴대전화에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을 접목시켰다. 종의 진화가 아니라 종의 배합이었다. 그리고 아이폰이 탄생했다.

스스로 창업한 회사이기도 하지만 잡스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애플이라는 회사의 운명과 같은 궤도를 그린다. 사내정치에 패배해 13년간 애플을 떠나 있을 때 회사는 바닥까지 추락했고, 그가 복귀하자 회사는 다시 살아났다. 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사에서 펼친 전략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미 시장에 선보인 기술을 단순하게 디자인하고 재해석했을 뿐이다. 음악·영화와 같은 문화 콘텐트를 들여와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했다.

최근 아이폰을 위한 소프트웨어 장터인 앱스토어를 개설한 지 18개월 동안 30억 건이라는 다운로드를 기록하자 잡스는 “당분간 경쟁자는 없는 것 같다”고 승자의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2009년 9월 9일 새로운 아이팟 발표를 위해 잡스가 단상에 오르자 관객은 기립박수했다. 그는 앙상한 노인처럼 보였다. 그해 1월 돌연 병가를 낸 이후 대중 앞에 최초로 등장했다. 두 번째 생환(生還)이다.

그는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았다. 그후 체내의 단백질이 모두 빼앗기는 ‘호르몬 불균형’ 현상이 생겼다. 2009년 4월 잡스는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는 감리교대학병원에서 담낭과 위, 소장의 위쪽을 절개하고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미국 장기이식센터(UNOS) 정책에 따라 가능한 한 대기자 명단 앞자리에 오르기 위해 대기자 수가 비교적 적다는 테네시주로 이사를 갔다. 알려진 것보다 병세가 매우 심각한 상태였고 평생 동안 면역억제제를 복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생사를 넘나든 긴박한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잘 관리된 간이식 환자의 75%는 5년 이상 생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 투병의 고비를 겨우 넘겼던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축사에서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삶의 최고의 발명품은 죽음이다. 죽음은 인생을 변화시키고 새로움이 낡은 것을 버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한된 인생을 다른 사람의 생각(dogma)으로 낭비하지 말라.” 잡스는 병상에서 복귀한 후 오로지 신제품 개발에 몰입했다.

하나의 성공을 철저하게 활용해
경제 불황으로 저렴한 넷북이 유행하고 있을 때에도 애플만은 그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다.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만들 것이라는 암시를 하긴 했지만 이미 시장에 태블릿PC가 없던 것도 아니다. 콘텐트 공급 업체는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바라고 대중이 원하는 것은 손쉬운 조작이 가능한 실용성 있는 제품이다. 분석가들은 아이패드 시장에 미국의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사와 출판사가 참여했다는 점에 주목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자책(e-북)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하는 개인용 PC’라고 정의한다. 음악과 영상 콘텐트에 아이폰에서 작동하는 14만 개가 넘는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사용 가능한 점은 강력한 무기다. 현재 시장의 반응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올드 미디어’라 불리는 출판·인쇄 분야는 역사가 깊은 만큼 움직임도 무거울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지금까지 잡스는 온라인 시장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업체를 상대로 협상해 왔다. MP3플레이어인 ‘아이팟’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 거대 음반사 CEO와 유명 뮤지션을 직접 만나 설득하며 곡당 99센트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책정했다. 음원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음반사에 넘겼기 때문에 이 계약은 큰 성공을 거둔다. 하나의 성공을 이루면 그 성과를 최대한 활용했다. 아이폰의 경우 아이팟 기능이 제공되는 휴대전화라고 홍보했다. 미국 시장에 아이폰의 독점판매권을 통신사 AT&T에 주면서 통신료 일부를 받아내는 계약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칭찬은 과하게 비난은 가차없이
개발 중인 제품을 외부인에게 발설하는 직원은 누구든 그 자리에서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 스티브 잡스의 방식이다. 로드맵을 밝히지 않는 비밀주의 전략에 대중과 언론의 궁금증은 발표 순간까지 극에 달한다. 제품에 대한 정보를 유출시키면 상금을 주겠다는 매체까지 나타날 정도지만 이런 전략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 되고 있다.

심지어 제품의 테마를 던지면 매니어들이 온갖 아이디어를 내놓고 애플이 그중 되겠다 싶은 것을 고르기 위한 것 같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잡스와 일을 같이한 연구원은 ‘존경심과 두려움을 주는 리더’라고 평한다. “잡스는 모든 것을 챙깁니다. 작은 버튼의 위치도 관여하며 제대로 동작하지 않으면 뛰어난 개발자에게도 ‘당신이 뭘 알아?’라고 맹렬히 추궁합니다. 사용자의 자세로 평가하는 거죠. 칭찬은 과하게 비난은 가차없이….”

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제품의 유해물질 사용으로 애플을 비난하자 잡스는 소비자에게 ‘A Greener Apple’이라는 주제로 친환경 정책을 발표하며 환경단체에 지원금을 기부하는 대신 친환경 소재 사용과 부품 수를 줄이는 연구를 확대했다. 유럽 시장에서 애플의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가 논란이 되자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사용자 여러분이 음반사에 DRM을 없애달라고 요청하면 애플은 기꺼이 동참할 것”이라고 맞불을 놓는다.

주주총회에서 누군가 연봉 1달러의 의미에 대해 묻자 “50센트는 출근수당이고, 나머지는 능력수당”이라고 말한다. 농담 섞인 답변이지만 스톡옵션과 성과급을 제외하면 매년 잡스의 연봉은 1달러다. 회사를 성장시킨 만큼 받겠다는 생각으로 경영자와 월급쟁이의 역할을 구분한다. 불리한 언론의 질문도 빠르고 재치있는 응답으로 자신과 애플을 대변하는 것도 능숙하다.

70년대 차고(車庫)에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고 80년대에 비로소 디지털 시장을 맞이했다. 그러나 잡스의 독선적이고 예술가적 기질을 감당할 수 없는 시대이기도 했다. 변방에서 소프트웨어와 3D그래픽 애니메이션 분야에 투자하고 있을 때 기능 위주의 양적 팽창이 가속된 90년대가 지나갔다. 그리고 지난 10년은 사용하기 편리하고 감성적인 제품이 성공을 거뒀다. 그 안에서 잡스는 개인 미디어 성장과 흐름을 읽어낸 것이다.

지난해 말 아이폰이 한국 시장에 등장한 후 애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높아졌다. 어느새 IT업계에 방향을 가리키는 존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잡스의 거대한 존재감은 애플의 후계자를 고민하게 만든다. 최근 사업 영역이 계속해 충돌하는 구글과의 경쟁구도도 불안한 요소다. 그리고 이들 뒤에는 방심한 사이 인터넷 시장의 주도권을 놓치고 모두를 벼르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웨어가 있다.

2007년 5월 월스트리트 저널 주최로 "디지털에 관한 모든 것(All Things Digital)"이라는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 자리에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역사적인 대담이 이뤄졌는데 빌은 잡스를 이렇게 평가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자세와 다음 세대를 예견하고 답을 보여주는 그의 능력이 경이롭습니다.” 잡스는 지금 이 시대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과 직감을 믿고 따르는 용기’라고 말한다.

남궁유 디자이너(중앙일보 디자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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