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대건설 자구계획 내부 혼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현대가 자중지란에 빠졌다.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6일 현대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보유주식을 내놓겠다는 '사재출자 카드' 를 제시한 뒤 5시간 만에 후퇴했다가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갈팡질팡하고 있다.

현대가 허둥대는 사이 정부와 채권단은 '원칙대로 한다' 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현대가 어떤 추가 자구계획을 내놓든 물대어음을 현대 스스로 막는 것이 중요하며, 문제가 생기면 부도 처리한 뒤 법정관리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대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법정관리를 거쳐 채권단이 출자전환할 것" 이라며 "현대건설의 노하우와 해외건설 공사 기반을 지키고 고용도 유지할 것" 이라고 밝혔다. 채권단이 현대건설에 대출금을 출자전환하면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은 박탈될 가능성이 크다.

◇ 내부 혼선으로 갈팡질팡〓현대는 6일 정몽헌 회장 계열의 현대건설과 현대상선, 그룹 구조조정본부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

鄭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계동 사옥에서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을 만나는 등 그룹 차원의 자구책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鄭회장이 나서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일부가 와전돼 혼란을 야기했다" 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은 이날 오후 1시50분 ▶鄭회장이 보유주식을 매각해 8백28억원을 마련, 이를 현대건설에 출자하고▶전.현직 임직원이 '현대건설 살리기 모금 운동' 에 나섰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룹측은 오후 7시 공식 보도자료를 내 鄭회장의 보유주식 전량 매각 방침을 부인하고, 대신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현대전자 주식(시가 5천5백14억원)을 우선 매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대상선은 김충식 사장 명의로 "그룹과 협의한 사실이 없다" 며 "이사회가 의결할 사항이며 매각할 계획이 없다" 고 반박했다.

그러자 그룹측은 "현대상선의 보유주식 매각 추진은 협의 이전에 鄭회장이 검토한 사항 가운데 하나" 라고 되받았다.

회사 살리기 모금 운동에 대해 일부 현대건설 직원들은 "분위기가 그쪽으로 돌아 동참해야 하겠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는 반응을 보였다.

◇ 정몽헌 회장 사재출자 왜 번복했나〓현대는 발표 과정에서 와전됐다고 해명했지만 오너의 사재출자라는 민감한 내용이 뒤바뀐 것을 단순히 실수로 보긴 어렵다.

현대 주변에서는 정부가 현대와의 협상 과정에서 鄭회장의 사재출자 방안을 골자로 한 자구계획에 퇴짜를 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사재출자는 기본이며 이밖에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실현성 있는 자구책을 주문했으리란 것이다.

일부에선 현대가 정부의 고강도 압박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기 위해 鄭회장의 사재출자 카드로 국면 전환을 꾀했다가 정부와 시장의 반응이 시원찮자 스스로 꼬리를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 현대 자구안 무엇을 담을까〓현대그룹은 지금까지 알려진 ▶鄭회장이 보유한 현대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주식 매각▶현대상선이 보유한 중공업.전자 주식 매각▶현대전자의 매각을 염두에 두고 독립 운영하는 방안 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대상선 보유 주식 매각은 현대상선이 반발하고 나섰고, 鄭회장 보유주식 매각은 정부와 채권단이 미흡하다고 보고 있다.

현대는 또 현대전자와 비상장 계열사인 현대정보기술 등을 매각해 추가 자금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당사자인 현대전자가 반발하고 있다. 현대전자는 지난 5일 재무상태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미국 시티그룹을 경영 자문역으로 정해 투명경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현대건설 등 다른 계열사를 도울 수 없다는 뜻이다.

현대전자 관계자는 "발행주식 5억주 가운데 현대 오너와 계열사 지분은 1억주에 못미쳐 시가대로 팔아도 8천억원밖에 안돼 현대건설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며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보유주식을 팔아 현대건설을 돕는다면 소액주주들이 가만히 있겠느냐" 고 말했다.

정몽헌 회장이 1.7%, 현대상선과 현대중공업이 각각 9%씩 갖고 있는 등 오너와 특수 관계인의 현대전자 지분은 19.7%인 데 비해 외국인 지분이 40%를 웃돌고 있다.

현대전자 매각과 관련, 그동안 일본의 한 반도체 회사와 경영권 이전 절차를 협의 중이라거나 대만의 반도체 업체가 50억달러를 제시했다는 등 소문이 나돌았다.

김시래.양선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