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란 코앞에 MD 구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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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란을 둘러싼 주변국들에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핵 개발 문제로 서방과 갈등 중인 이란의 무력 도발 가능성을 억제하기 위해서다.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할 수 있는 이지스함 등을 이란 인근 해역에 증강 배치하고 있다. 또 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쿠웨이트 등 이란 주변국들에 패트리엇 미사일 등 지상요격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미국이 이미 몇 개월 전부터 중동 지역에 MD 구축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걸프 주변국들이 미국의 군사원조와 파병을 받아들인 사실을 공개하기 꺼리지만 미국이 이 지역에 군사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뉴욕 타임스(NYT)는 전했다. 미국의 중동 지역 최고 지휘관인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미 중부군 사령관도 패트리엇 미사일이 이 지역에 배치된 사실을 최근 밝히기 시작했다.

◆미국의 강수 배경은=미국의 중동지역 MD 구축은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는 과정의 하나라고 NYT는 분석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서방과 이란이 맺은 핵 개발 제한 합의안을 이란이 최종 거부하면서 외교적 압박을 강화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정연설에서 이란이 미국의 요구를 계속 거부할 경우 발생할 ‘결과’를 재차 경고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9일 중국이 이란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외교적 고립과 에너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이유는 러시아다. 오바마는 지난해 러시아가 반대해온 동유럽 MD 시스템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이 선언이 러시아에 선물을 주면서 동유럽의 군비를 중동으로 옮길 여지를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중동으로의 MD 이동은 러시아의 협조를 이끌어낼 조건을 형성했다. AP통신이 최근 단독 입수한 미 정부 보고서는 걸프 지역에서 효과적인 방어를 위해선 러시아와의 군사적 공조가 필수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운 걷히지 않는 걸프만=미 정부 관계자는 “중동 지역 MD 구축의 첫째 목표는 이란에 대한 억지력을 갖는 것이고, 둘째는 인근 아랍국가를 안심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 지역 군사 최강국인 이란은 이스라엘과 남동부 유럽을 요격할 수 있는 사거리 2000㎞의 샤하브3를 배치했으며 지난해 말 비슷한 사거리의 세질2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 현재 걸프만에 배치된 미국의 이지스함 체계론 이들을 요격하기 어렵다.

이란의 위협이 강화됨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은 자체 미사일 방어 체계를 가동 중이다. 사우디와 UAE는 지난 2년간 미국산 무기 구입에 총 15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이스라엘은 그간 서방이 이란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키지 못하면 이란 핵 시설을 자체 공격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 왔다. 현재 이스라엘은 거리상 공중급유 없인 이란 폭격이 힘들지만 내부적으로 ‘가미카제’식 자살공격도 불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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