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단양 구인사 대조사전 10년만에 완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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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구인사의 대조사전은 오래 전부터 불교계에서 화제가 돼왔다. 충북 단양의 산골짜기에 자리잡은 구인사는 '천태종' 의 본산이고, 대조사전은 오늘의 천태종을 일으킨 조사(祖師)를 모시는 곳이기에 종단이 총력을 쏟고 있음이 널리 알려져왔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소문이 끊이지 않던 대조사전이 마침내 완공돼 5일 낙성법요식을 한다.

대조사전을 직접 찾아가보면 소문이 헛된 것이 아님을 실감한다. 우선 조사전이 차지한 자리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수리봉 정상에서 내리뻗은 깊은 골짜기 한가운데, 구인사 경내를 한 눈에 내려다보는 암벽에 붙어있다.

터를 조성하기 위해 암반을 깎아내고 다시 애석(흰돌)을 포개 기단을 만들었다. 꼭 그렇게 힘든 터를 닦아야 했던 것은 그 자리가 조사의 묘소와 구인사를 잇는 중간이고, 풍수 상 비상하는 독수리의 심장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란다.

가파른 골짜기에 자리잡은 대조사전은 크고 화려하다. 목조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높이 27m 3층 다포집. 외양은 3층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바깥으로 9포, 안쪽으로 13포라 시각적으로 웅장하고 화려하다.

실내로 들어서면 닫집(불대 위에 만든 집모양)의 화려함이 본체를 압도할 정도다. 만든 사람들도 화려하다.

무형문화재 대목장인 신응수씨가 총지휘를 맡았다. 역시 인간문화재인 소목 조찬형씨와 특수 금빛 기와를 개발해 낸 기와장 오세필씨, 단청을 그린 전창우씨 등이 모두 최고의 장인들이다.

신씨는 "이런 건물은 전무후무할 것" 이라고 단정한다. 건물에 사용된 태백산 적송(춘양목)을 앞으로는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최고의 목재인 춘양목, 그것도 3백년 이상 된 곧은 나무들을 50만재나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마침 정부에서 공공목적으로 구해 놓았던 나무가 계획 차질로 고스란히 남아 이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둥은 높이 27m에 어른 두 사람이 싸안아야 할 정도로 굵으면서도 올곧다. 태백산 줄기를 아무리 뒤져도 이같이 많은 춘양목을 찾기도 힘들고, 벨 수도 없다고 한다.

그렇게 구한 나무가 혹시 휘거나 삭을까봐 옻칠을 12번이나 거듭해가며 말린 다음 금가루를 섞은 단청을 그려넣었다.

서까래마다 연꽃이 빼곡하고 골마다 아라한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문짝에 단 문고리와 경첩 외에 쇠붙이는 한 조각도 쓰지 않았다.

'황금기와' 도 세계에서 유일하다. 독실한 불교도인 기와장 오세필씨가 16년 전 대조사전 건립을 처음 구상한 종정스님으로부터 '금빛 기와를 구워내라' 는 특명을 받고 10여년간 연구를 거듭해 내놓은 특허품이다.

청자.백자용 흙을 섞어 반죽하고 표면에 특별한 유액을 발라 1천3백도의 고온에서 구워 금빛 꽃모양의 반점이 기와의 표면을 뒤덮게 만든 것이다. 고온에서 구워낸 기와는 그 자체가 도자기인지라 빛깔이 바래지 않는다고 한다.

10년간 매년 10억원 이상씩 예산이 들어갔다. 이렇게 비싼 목조 건물이 만들어진 것은 천태종이 '종단의 자존심' 을 걸고 추진했기 때문이다.

총무원장 운덕 스님은 "구인사가 골짜기에 자리잡아 모두 철골에 시멘트로 절집을 지었다. 그러다보니 주위에서 '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 없다' 고들 해 '제대로 된 목조 건물 하나 만들어 조사를 모시자' 고 마음 먹었다" 고 한다.

천태종은 대조사전에 모셔질 상월원각 스님이 1945년 대각국사 의천의 맥을 이어 중창한 종단으로 부산.경남을 중심으로 급속히 교세를 확장해왔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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