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리산 잇단 대규모 산사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해발 1800m가 넘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의 지리산 중봉. 정상에서 서쪽으로 150m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해 칠선계곡 쪽으로 가문비나무와 잣나무.구상나무 등이 무성했던 숲이 온데간데 없어졌다. 평균 14m의 폭으로 400m 가까이 길다란 뱀처럼 토석이 밀려내려가 200~300년이 넘은 오랜 숲을 덮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지리산의 무성한 숲을 손톱으로 할퀴고 지나간 듯한 산사태가 발생한 곳은 여기뿐만 아니다.

녹색연합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해 5월부터 최근까지 지리산의 산사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중봉에서 주능선을 타고 서쪽으로 전북 남원시의 반야봉에 이르기까지 모두 29곳에서 산사태가 관찰됐다고 10일 밝혔다. 산사태의 대부분은 천왕봉을 중심으로 한 지리산 동부 지역에서 해발 1500m가 넘고, 경사도가 30도 이상되는 가파른 곳에서 발생했다. 산사태의 길이는 30m에서 400m에 이르기까지 다양했고 전체 면적은 4만㎡가 넘는다. 문제는 설악산 등 다른 국립공원과 달리 지리산에서만, 그것도 최근 10여년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가문비나무.구상나무.주목 등 해발 1500m 이상의 아고산대 특유의 식생이 피해를 보고 있어 자연적 현상이라고 무관심하게 내버려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

이 때문에 산사태의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는 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녹색연합 서재철 국장은 "산사태는 집중 강우시 발생하는 게 보통인데, 태풍이 한반도로 들어오는 길목에 지리산이 자리잡고 있어 산사태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태풍과 게릴라성 폭우가 자주 발생하는 등 강우 패턴이 변한 것이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추측이다. 실제로 전북 남원과 경남 산청 지역의 강우 기록을 보면 시간당 최대 강우량이 50㎜가 넘는 경우와 하루 최대 강우량이 150㎜가 넘는 경우가 1996년 이후 두 지역에서 세번씩 나타났다. 반면 90~95년에는 관측되지 않았다.

서 국장은 "환경부와 산림청.기상청 등이 협력해 항공기와 인공위성, 현장 정밀조사를 통해 산사태 추가 발생 상황을 모니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