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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서울] 휴식공간 인색한 서울 거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한 패스트푸드점 앞. 젊은이들의 단골 약속 장소인 이곳에는 이날도 20여명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십분씩도 기다려야 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불편한 자세로 주변을 서성인다. 간혹 다리를 쉬려 해도 차가운 벽돌 기둥에 걸터 앉거나 지저분한 건물벽에 기댈 수 있을 뿐이다. 주변에 벤치가 없기 때문이다.

친구를 기다리던 이현화(李賢華.23)씨는 "조각도 있고 주변 상가도 운치가 있는 이 곳에 간단한 앉을 곳이 있다면 더욱 좋겠다" 며 "벽돌 기둥위에 나무판만 깔아줘도 한결 편리할 것 같다" 고 아쉬워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남산순환도로변. 이 곳은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즐비한 데다 서울의 전경이 내려다 보여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버스를 기다리던 주부 김진자(金眞子.45.서울 용산구 후암동)씨는 "정류장 표지 아래 마냥 서 있기가 너무 힘들다" 며 "인도변에 작은 공간을 마련한 뒤 쉼터나 벤치를 설치한다면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하는 명소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인도는 좁고 사람은 많아 항상 북적대는 서울 거리. 막상 발걸음을 멈추고 쉬면서 잠시 여유를 가져볼만한 곳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인도에 깔끔하게 마련된 벤치에서 광화문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벤치도, 쉼터도 없어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서울 거리를 바꾸는 방법은 없을까.

시민들의 휴식처인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도 높이가 낮고 다리는 망가져 앉기에 부적합한 벤치들이 군데군데 방치돼 있다.

백여개 벤치 중 한강의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도록 강변이 보이게 제대로 설치한 벤치는 고작 10여개.

연인과 함께 한강을 찾았다는 김태성(金泰成.33)씨는 "강의 전체적인 풍광을 볼 수 있는 벤치는 인기가 좋아 빈 자리가 잘 없다" 고 말했다. 벤치의 공간 배치가 공원의 씀씀이를 결정짓는 좋은 예다.

◇ 대책=피곤한 서울 거리에 안정감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거리 곳곳에 보석처럼 숨어있는 소규모 쉼터나 벤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지난달 31일 대학로 한복판 지하철 환풍구에 간신히 엉덩이만 걸친 채 앉아 있던 우크라이나 출신 교환학생 레오나르도(23)는 "우크라이나 거리에는 서울보다 훨씬 벤치가 많다" 며 "앉아 이야기할 장소가 생기면 거리도 함께 밝아질 것" 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에 들어선 밀레니엄 타워 앞은 건물과 함께 설치된 작은 좌석과 가로수로 시민들이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남산순환도로 국립도서관 건너편 버스정류장 뒤에도 작은 정자가 꾸며져 요긴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국내에는 거리에 벤치를 두도록 하는 특별한 규정은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도에 벤치를 놓는 일은 보행에 지장을 줄 뿐" 이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도로와 인접한 대학로 인도에 설치된 한 벤치에 앉아있던 김원진(金原辰.22)씨는 "너무 좁은 인도는 곤란하겠지만 여기처럼 공간이 어느 정도 되는 곳에 쉼터나 벤치를 두면 마음마저 여유로워질 것" 이라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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