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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부패가 남남갈등 원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우리는 지금 부패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가, 아니면 그 긴 터널의 가장 깊숙한 곳에 아예 정착하고 있는가.

부패한 '절대권력' 이라는 말이 신문에 예사로 오르내린다. 부패를 척결해야 할 대통령은 '개탄' 만 하고 국민은 '한숨' 만 쉰다는 기사도 보통으로 나오고 있다.

이 정부 들어 개혁과 부패는 함수관계처럼 진행되고 있다. 개혁을 내세우는 것만큼 부패의 빈도도 잦고, 부패의 빈도가 잦은 것만큼 개혁의 목소리도 높다.

그 함수관계의 악순환은 끊임없이 계속되는데 그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는 사람도 없고 끊으려는 시도도 없다.

마침내 "개혁의 심장부가 속속들이 썩어 있다" 는 기사가 연일 지면을 장식한다. 금융감독원이 아니라 '금융강도원' 이라는 큼지막한 제목의 비판도 쏟아진다.

그것이 우리 금융의 실상이라면 우리가 강도에게 은행을 맡기고 있었단 말인가. 그 언어를 절(絶)하는 경악의 소리가 여과없이 보도될 만큼 우리 부패는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가.

공기업의 부패도 날로 심화해 부채규모가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국가채무의 세배인 4백조원에 이르고, 거기에 한 공기업이 술값으로 날린 돈만도 19억원이 넘는다니, 이러고도 나라가 온전한가.

벤처기업은 벤처기업대로 정치와 유착되고,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시민단체마저 상당수가 정부 홍보예산을 써서 도덕성.공정성 시비를 야기하고 있다. 어떤 단체든 정부돈을 쓰면 정권의 들러리가 된다.

시민단체도 예외일 수 없어 올해 들어 부쩍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권 홍위병' 이라는 레테르를 꼬리에 물고 다닌다.

투명성이 없어 국민의 짙은 의혹을 쌓기는 대북경협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내복소동' 이라는 대북경협의 하나로 지목되는 이 근거를 알 수 없는 소동에서 비춰지듯 뒷거래.물밑거래.밀실거래가 지나치게 횡행한다는 소리가 온 사방에서 높다.

뭐가 어떻게 되느냐는 의문의 질타가 국민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부 내 해당부처간에도 나오고 있다.

이 정부의 도덕성을 도시 어디까지 의심해야 하고,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금융감독원과 같은 특정부서 특정기관이 아니라 전체의 도덕성이 문제가 된다.

거기에 국민불만도를 측정하면 정부 기본기능의 수행도도 최하위라 할 만큼 비효율적이다. 더구나 그런 국정수행에 책임을 통감하는 사람도 없고, 그런 만연한 부패에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다.

책임자가 없는 것만큼 국민들은 이 모든 부패, 이 모든 비리가 권력형 부패며 비리라 생각한다.

그 어느 부패며 비리도 권력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라 절대로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검찰로 넘어가면 '권력형' 은 간 곳이 없고, 모두 '단순형' 사기가 돼 나온다.

권력 주변의 식객들이 정부기구라는 식탁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거리낌없이 국민의 양식을 먹어치우는 데도 별 것이 아닌 것으로 처리된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연전에 조사한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다섯나라의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공공기관에 검찰.경찰.법원.대통령 및 총리가 공통적으로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반대로 우리는 가장 부패한 공공기관의 최상위권에 검찰.경찰.법원.중앙부처가 올라 있고, 심지어 청와대도 조사대상자의 66.7%가 부패해 있다고 답하고 있다(99년 6월 조사).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하는 부패순위도 이 정부 들어 해마다 올라가, 투명성 순위가 이전 정부에서 27위.33위 하던 것이 이젠 48위로 떨어져 있다. 아프리카 어느 전근대국가나 다를 것이 없게 됐다.

부패만큼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없고, 부패만큼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 없다. 우리는 지금 남북갈등보다 남남갈등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

부패에서 오는 가장 무서운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안에 있다. 부패하면 내부통제가 무너지고, 그 다음 어김없이 '조직상의 존속살인' (patricide)이 자행된다.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듯, 조직 성원이 조직을 와해하고 국민이 국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국가가 무너지는데 남북관계는 무슨 의미가 있고 통일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국제적인 상(賞)은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무의미를 가져오는 남남갈등을 현정부의 권력형 부패며 비리가 빚어내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치다 할 것인가.

송복 <연세대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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