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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찾은 '러브레터' 이와이 슌지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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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일본 감독 이와이 슌지는 한국 영화인의 열정과 끈기를 부러워했다. 송봉근 기자

'러브레터'의 이와이 슌지(41)감독이 신작 '하나와 앨리스'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개봉 10년이 다된 지금도 일본 최고의 멜로영화로 손꼽히는 '러브레터'를 비롯해 '4월 이야기' 등 그의 작품은 소녀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멜로 드라마가 많다. '하나와 앨리스'역시 두 여고생 하나와 앨리스가 한 남학생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삼각관계를 감성적이면서도 유쾌하게 다룬 멜로드라마다. 이와이 감독을 부산에서 만났다. 영화는 다음달 12일 일반 개봉할 예정이다.

- 여성보다 더 여성의 감성을 잘 표현하는 비결이라도 있나.

"어릴 때부터 인물화를 즐겨 그리다 보니 사람의 특징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원래 여자들의 감성에 대해 잘 알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자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궁금했고, 그래서 더욱 유심히 관찰했다. 어느 순간 여자들의 미묘한 감성을 잡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겨울연가'가 최근 일본의 멜로 열풍을 이끌고 있다. 멜로 감독으로서 한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에서 보면 모든 일본 사람이 '겨울연가'에 열광하는 것 같지만 실은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도 많다. '겨울연가'같은 멜로는 일본에도 많은데 말이다. 일본 시청자가 이제 일본 배우에게 질린 것 같다. 그래서 비슷한 내용이라면 다른 나라 스타가 나오는 드라마를 찾는 게 아닌가 싶다. 예컨대 인기 그룹 스마프(SMAP) 멤버들이 지난 10년간 가수로서만이 아니라 배우로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에선 이에 견줄 만한 다른 스타를 아직 발굴하지 못했다."

-함께 일하고 싶은 한국 배우가 있나.

"한국 배우도 뛰어나지만 그보다 스태프들과 작업을 해보고 싶다. '엽기적인 그녀'를 보면서 한국 스태프가 만들었기에 이렇게 뛰어난 영상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뭐든 너무 빨리 포기하는 일본 스태프와 달리 한국 스태프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역도산'을 촬영 중인 설경구가 몸무게를 수십kg이나 늘린 것을 보고 한국 배우는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일본 배우는 외모만 중요시하는 편이다. 뭘 준비해 오라고 하면 "이 정도면 되죠"라며 적당히 해온다. 하지만 이렇게 해선 관객을 즐겁게 할 수 없다. 감독.배우 모두 최대치를 발휘해야 사람들이 감동하는데 요즘 일본 영화는 노력을 게을리한다.

-'하나와 앨리스'에서 각본.편집은 물론 음악까지 직접 했다. 스태프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아니다(웃음). 대학 때 영화서클에 가입했는데 모두 영화는 안 만들고 마작만 해서 영사기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더라. 그래서 4년 동안 혼자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면 첫날은 30명이 모였다가 둘째 날은 15명, 마지막날엔 주연배우하고 나 둘만 남았다. 다들 스태프를 하기 싫어했기 때문에 뭐든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프로 감독이 되고 나니 이것저것 해보려고 해도 스태프의 몫이라며 말리더라. 그래도 가능하면 다른 스태프 역할까지 해보려고 한다."

-원래 온라인용 단편이었는데 다시 장편으로 만든 이유는.

"하나가 친한 친구 앨리스에게 남자친구를 빼앗기는 내용은 같다. 하지만 단편엔 하나가 짝사랑하는 선배에게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기를 사랑한 사실을 잊어버렸다'고 거짓말하는 얘기는 없다. 단편에선 앨리스가 악역이라 모두 하나 편이었지만 장편에선 하나가 속이고 들어가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제 하나를 비난한다. 줄거리는 같아도 관객이 주인공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시선이 달라진다. 정보에 따라 인간관계가 달라진다는 테마를 실험해봤다."

부산=안혜리 기자 <hyeree@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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