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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비즈] 13년간 여대생 2000여 명 심금 울린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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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해마다 140명씩 어림잡아 2000여 명의 여대생을 울린 남자가 있다. 주인공은 현대백화점 김경호(50·사진) 인재개발원장(상무). 김 원장은 1997년부터 이 회사의 ‘산학협력 서비스 아카데미’ 강사로 활동하며 여름과 겨울방학 한 차례씩 호소력 짙은 강의로 여대생들의 심금을 울린 것.

그의 강의는 서울여대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특강으로 한 번만 하려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강의 내용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2001년부터는 성신여대에서도 강의했다. 두 대학에선 이 과정을 학점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 뒤 다른 대학의 요청이 몰리면서 2004년부터는 아예 서울 10개 대학 추천 학생을 따로 모아 특강을 하고 있다.

25일에도 방학을 맞아 산학협력 과정을 찾은 여대생 70여 명 앞에서 강의했다. 주제는 ‘고객 만족과 서비스’. 평범한 제목이었지만 60분짜리 강의가 끝날 무렵 강의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그는 단순히 ‘서비스란 무엇인지’를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부모 세대의 어려움, 본인의 직장 경험 등을 담담하게 술회했다.

그는 “여러분의 부모 세대는 멀리 독일까지 가 오늘의 여러분을 키웠습니다. 여러분이 편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노후를 포기하고 여러분을 키워낸 부모님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진정한 서비스의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강의 보조자료인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에는 1960년대 독일로 파견된 젊은 광부와 간호사 사진이 애잔한 음악과 함께 담겨 있다. 그의 미니 홈페이지(www.cyworld.com/kh0801)에는 매일 40명이 넘는 사람이 방문한다. 대부분 그의 강의를 들었던 여학생들이다. 이들은 홈페이지에 들러 취업과 관련한 고민에 대한 답을 구하거나 직장생활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을 털어놓는다. 방문자 중에는 김 원장에게 주례를 부탁하는 이도 있다.

김 원장은 85년 현대그룹 공채로 입사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인사·교육 담당을 거쳐 97년부터 인재개발원에서 근무 중이다.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강의 도구나 강의를 듣는 사람 모두 변했다. 강의 초기엔 궤도와 칠판·환등기가 부교재로 쓰였다. 이제 그 자리를 파워포인트 파일과 레이저 포인터가 대신하고 있다.

젊은 세대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그는 “13년 전이나 요즘이나 취업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요즘 학생들은 그때보다 도전정신이 부족하고 의지도 약한 것 같다”며 “교육과정을 중간에 포기하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게 그 증거”라고 말했다. 또 “요즘 학생들은 취업을 준비하면서 너무 뭔가를 많이 하려는 것 같은데 이건 당장 사장이 될 수 없는데 사장학을 익히는 꼴”이라며 “차라리 남의 말을 경청하는 법을 배우고, 한 가지라도 똑 부러지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취업이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직장인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자기 자리에서 남들보다 너무 잘할 필요도 없고 10~20%만 더 잘하면 된다는 것이다. 사내교육을 받더라도 먼저 강의장에 들어와 교재를 훑어보는 ‘작은 성의’를 갖춘 사람이라면 분명 일에서도 두각을 보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8000명이 넘는 현대백화점그룹 임직원의 교육을 맡고 있는 김 원장은 직접 강의교재를 만든다. 그는 “내가 맡은 일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일부나마 내비게이션이 되어 주는 것”이라며 “내 강의를 듣는 사람은 내 고객이고, 고객을 위해서라면 휴일에도 기꺼이 강의를 준비하는 자세가 지금까지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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