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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기행] 2. '아리야'의 두얼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페르시아는 고대로부터의 대외적인 국명이다. 1935년 이란으로 바뀔 때까지 사용됐다.

그러나 페르시아 사람들은 내부적으로 자기나라를 '아리야(Ariya)' 라고 불렀다. 그들의 문화적.종교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이름이 아리야다.

우리 일행은 이슬람 문명이전(BC 7세기 이전)의 유물들이 모두 전시돼 있다는 테헤란의 이란 국립박물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리야' 라는 용어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박물관의 여러 유물 중 북쪽 벽의 반 이상을 차지한 부조물이 특히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안내문에는 페르세폴리스의 보물창고에서 떼어 내온 '다리우스 대왕(BC 522-486)과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BC 486-465)의 부조물' 이라고 적혀 있다.

고레스가 페르시아를 창건했다면 3대 대왕 다리우스는 주변 23개국을 정벌, 대제국을 완성한 인물이다.

최전성기 다리우스는 속국으로부터 조공을 받던 수도 페세르폴리스에 당시 세계 제패의 웅지를 나타내는 부조물 2개를 세웠다.

이 부조물은 1936년 미국 시카고대학의 근동연구소팀에 의해 발굴, 하나는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하나는 아직도 원래의 자리에 남아있다.

높이 2m, 길이 20m의 짙은 회색 현무암에 새겨진 부조물에는 제국의 웅지와 함께 그들이 지향했던 평화와 조화의 정신도 읽을 수 있다.

한 가운데 근엄하게 앉아있는 다리우스 대왕은 오른손에는 통치권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왼손에는 평화를 뜻하는 연꽃을 들고 있으며, 고대 근동지방에서 왕권 또는 신권을 상징했던 발판 위에 그의 발이 놓여 있다.

다리우스 대왕 뒤편에 세자인 크세르크세스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어 경의를 표시하면서 왼손에는 연꽃을 든 채 서 있다.

그 밖에 헌작(獻爵) 대신과 무기 감독관이 크세르크세스 뒤쪽으로 서 있다. 다리우스 왕좌 앞에는 두 개의 향로가 놓여 있다. 향로는 아후라 마즈다를 최고신으로 섬기는 조로아스터교의 종교의식에 쓰이던 것이다.

다리우스대왕과 크세르크세스왕은 그들의 민족.종교.언어를 대표하는 말로 페르시아 대신 아리야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자신들이 '아리야 종족' 이며, 언어는 '아리야어' , 정사(正思).정언(正言).정행(正行)이 기본 교리인 조로아스터교의 최고 신(神) 아후라 마즈다를 '아리야인들의 신' 이라고 기록했다.

이란의 가장 오래된 문서이며 아후라 마즈다 종교의 경전 '아베스타' (BC 12세기경)에서 '아리야' 는 '조화로운.숭고한' 의 의미로 쓰였다.

아베스타에 나오는 '아이리야만' 신(神)은 평화의 신이며 동시에 혼인을 관장하는 신이다. 부조물 중앙에 있는 두 향로와 다리우스 부자가 들고 있는 연꽃은 바로 아리야의 정신세계 '평화와 조화' 를 상징하는 것이다.

1940년대 들어와 히틀러를 중심으로 나찌는 문화적이며 종교적인 개념인 아리야를 인종개념으로 변질시켰다.

고대 인도의 고도로 발달된 문명은 BC 15세기경 그곳을 침입한 아리야인들이 건설한 것으로, 곧 유럽인들의 문명이라는 억지 주장을 폈다.

히틀러는 게르만계 아리야가 지상의 유일한 창조적인 집단이며, 인류의 위대함과 진보의 유리한 자원이라 해석하기에 이른다.

독일제국이 아리야의 정점이며 아리야를 보존 시키는것이 독일, 게르만족의 생존뿐만 아니라 인류 생존에 절대 필요하다는 거짓 신화가 만들어진다.

최우수 종족 독일인의 순수한 피를 유지해야한다는 허상의 결과가 20세기 최대의 죄악으로 꼽히는 유대인 대학살이다.

정복한 국가들의 문화를 존중하며 다언어주의.다문화주의 정책을 펼쳤던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아리야 정신이 히틀러에 의해 '전쟁과 파괴' 의 상징으로 전락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배철현 <美 하버드대 문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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