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고추장소스로 외국인 입맛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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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옥례(오른쪽)씨가 7대째 가업을 잇는 아들 조경현씨와 함께 고추장 숙성도를 확인하고 있다. [순창=프리랜서 오종찬]

“우리 전통 발효식품은 세계 어디 내놔도 자랑할만한 건강장수 음식입니다. 특히 고추장은 맵고 짜고 달콤한 맛의 조화가 오묘하지요. 전통식품의 깊은 맛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만큼 가업으로 계속 되물림됐으면 좋겠어요.”

26일 농수산식품부로부터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받은 문옥례(80·전북 순창군 순창읍)씨의 말이다. 문씨 집안은 ‘고추장 고을’ 순창에서도 인정받는 ‘고추장 명가’다. 가업을 잇기 위해 함께 뛰는 아들까지 7대째 200년 이상 고추장을 만들어 팔고 있다. 문씨는 20세에 시집와 시어머니한테서 간장·고추장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사대부 집안의 전통을 지켜온 시어머니는 마늘 한쪽도 허투루 쓰지 않고 꼭 채를 썰어 넣도록 엄하게 가르쳤다.

눈썰미가 좋고 솜씨가 뛰어난 문씨는 곧 고추장 집 며느리로 이름을 날렸다. 1962년 순창군에서 처음으로 ‘고추장상회’라는 전문점 간판을 내걸었다. 81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렸던 ‘국풍81’의 부대행사인 전국특산물판매전에 출품했다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됐다. 그 뒤 전국에서 열린 장담기 이벤트에 단골로 불려 다녔다. 밀려오는 주문 속에 집 마당과 마루는 고추장 단지로 뒤덮였다.

문씨의 열정과 노하우는 둘째(조경현·53)과 세째(조종현·50) 아들에게 대물림됐다. 20여 년 전부터 ‘문옥례 브랜드’로 제각각 고추장·된장 등을 생산하고 있다. 집안 전체 매출은 연 70억~80억 원에 이른다.

특히 둘째 조경현씨는 특히 고추장소스로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뛰고 있다. 외국인과 신세대 입맛을 겨냥해 로즈메리·월계수 등 허브향을 첨가해 만든 일종의 퓨전 고추장이다. 그는 “조경회사에서 해외근무를 할 때 매운 소스가 외국인들의 인기를 끄는 걸 보고, 우리 고추장 맛이면 국제무대서 충분히 통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 연구개발에 뛰어 들었다”고 밝혔다.

현재 고추장 소스는 현재 미국·캐나다·러시아 등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교포보다는 현지인이 주고객이다. 지난해 8㎏짜리 1만2000박스(약 5억원 어치)를 수출했다.

어머니 문씨는 신제품의 맛과 완성도를 승인하는 최종 감별사 역할을 한다. 문씨는 “고추장은 우리 땅에서 나는 재료를 쓰고 절기에 맞춰 뜸과 정성을 들여야 제맛이 난다”며 “식품은 돈 욕심이 앞서면 오래가지 못한다”고 자식들에게 늘 강조한다.

조경현씨는 “사계절이 녹아있고 스토리가 풍부한 발효음식이야말로 요즘 같은 웰빙트렌드에 가장 어울리는 한식”라며 “고추장소스를 한식세계화의 대표 브랜드로 키워 내겠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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