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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또 제기된 권력형 비리의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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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을 둘러싸고 정.관계 로비설 등 각종 의혹이 무성하게 번지고 있다.

한창 진행 중인 국정감사와 맞물리면서 일부 야당 의원들이 여권 실세 관련설을 제기, 사건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급기야 한나라당은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사건' 으로 규정하고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근거없는 유언비어' 라고 일축한 뒤, 오히려 '야당관련설' 을 제기하는 등 이번 사건이 새로운 정치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민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가운데 끝모를 정쟁(政爭)만 재연되는 형국이다.

정.관계 로비설이 등장한 직접적 발단은 사건 주역인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의 발언이다.

검찰에 고발돼 수배 중인 그는 일부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10억원 로비를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고 했고, "곧 불법대출과 연계된 금감원.정치권 등을 공개하겠다" 고 밝혔다.

이미 장내찬 금감원 국장이 불법으로 주식에 투자했고, 투자 손실 부분에 대해 뇌물성 보전까지 받은 혐의가 드러나면서 '과연 張국장 한 사람만 연계됐겠느냐' 는 의문이 제기된 상태다. 鄭씨의 발언에 당장 張국장 윗선과 정치권의 배후로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수백억원대의 대출금 향방이 묘연한데다 鄭씨를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이 평소 정.관계 인사와의 친분을 자랑하고 다녔다는 점도 그러한 의구심을 뒷받침하고 있다.

여기에 야당 의원들은 "鄭씨 리스트에 여권핵심 4인이 포함돼 있다" "K증권은 K씨가 돌봐준다" "S씨는 H사 로비를 받았다" 등 구체적인 물증 제시 없이 의혹설을 발설하고 있다.

이들은 P.K.K씨 등 청와대 고위인사나 여권의 핵심인사 이름을 직접 거명하기도 해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같은 의혹들은 코스닥 시장이 활황이던 지난 4월 총선으로 거슬러 올라가 증시조작-총선자금 유입 등 해괴한 소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빛은행 부정대출 사건에 연이어 터진 이번 사건으로 정부의 개혁의지가 크게 손상되게 됐다. 특히 사건이 터지면 으레 불거지는 정.관계 배후 연루설에 국민의 허탈감과 정부 불신은 극에 달한 상태다.

수배자의 숨어하는 언론플레이까지 이번 사건은 한빛은행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검찰 수사 역시 국민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하는 '미진한 수사' 로 결론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검찰이 어느때 보다 철저하게 수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검찰은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을 이번엔 정말 말끔히 씻어낸다는 각오로 수사에 임해야 한다.

야당도 '카더라' 수준의 증거없는 의혹설은 사회적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검찰 수사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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